‘요즘 책방:책을 읽어드립니다’의 ‘페스트’ 편을 본 것이 기억나 책을 구매하기로 했다. 교보문고 검색창에 ‘페스트’를 입력하고 검색을 누르니 각기 다른 표지를 뽐내며 같은 책들이 숫자가 달려 줄 세워져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띈 것은, 194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가장 오래된 표지가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순간, 모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초판본 표지를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다 읽고 선물 줄 건데 뭐‘라는 생각을 하며 가장 저렴한 파스텔톤 디자인 옆의 ’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만원이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송비가 이천 원이 더 붙는 것이 아닌가. 고민을 했다. 파스텔 표지와 초판본 표지는 대략 오천 원 차이. 하지만 배송비가 붙으면 삼천 원 차이. 삼천 원을 더 얹어주고 초판본 표지를 살 것인가, 아니면 저렴하게 그냥 파스텔 표지를 사야 할 것인가, 중고서점에 검색해볼까.
세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부딪히고 있는 중에, 문득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마도 이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깨어있는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며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중요시했고, 알량한 몇천 원을 아껴보자며 책의 내용이 아닌 껍질 따위를 저울에 올려두고 있었다.
물론 책 표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하지만 나는 그 책의 전문이 궁금했던 이유에서 책을 구매하려 한 것이고, 그 껍질 값 삼천 원을 가지고 삼십 분을 사용했다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알량한 인간의 티를 벗어내지 못했다. 파스텔 톤의 표지를 선택하면서도 배송비를 위해 이후 수업에 쓰일 책이라는 데미안을 함께 담았다. 그러고 나서 어제 주문했던 원피스를 취소했다. 그래, 나가지도 못하는데 무슨 옷이야. 그 돈으로 책을 사자.
문득 불쾌해졌다. 나는 몇천 원에 혹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들킨 기분이었다. 모른 척하고 싶은 내 모습을 땅속 깊이 묻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돌부리처럼 삐져나와 걸려 넘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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