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노트/생각노트

어쩌면, 완벽한 타인에 관하여

by 이 장르 2020. 6. 1.
728x90
반응형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그 영화에 대해 검색해보곤 한다. 이번 주 볼 영화는, 검색해보니 사랑을 그린 영화였다.

사실 처음에 이 영화와 소설을 받았을 땐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다행히 ‘퀴어’라는 단어가 통칭으로 사용되고 있었기에, 그것은 괜한 고민이 되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호칭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무관심했다는 말이다. 지난날, 그저 열린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살아왔던듯하여 부끄러웠다.

세상은 소수에게 얼마나 가혹한가. 세상 사람 중 약 50%, ‘여자‘로 살아가는 것도. 세계 인구 중 53%, ’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요즘은 퀴어를 세상의 일부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걸어온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남아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그들은 원래부터 세상의 일부였으며, 받아들이려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당연한 존재임에도 불구함에도. 그렇기에 그들은 어쩌면 ’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취향은 취향일 뿐이다. 마치, 난 커피를 좋아하고, 넌 콜라를 좋아하고. 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넌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우리가 무심코 따라 했던, 따라 하는 모든 것은 차별이다. 모든 말과 행동을 따라 하는 것, 묘사하는 것 자체도 차별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묘사한답시고 하는 행동들은 누가 봐도 권력주의적 차별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분명, 그들의 행동에 분노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부분에서는 관대한 것이 모순 아닐까.

어떠한 부분에 대하여,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 당사자보다 더 오래,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밤낮으로 고민을 한다고 하더라도 일상에 그것이 있는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부분은 그럴 것 같은 것이 아니라 그렇다.

나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내 생각을 말할 자격이 없지 않나 싶다. 이해를 가장한 추측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이해’ 하지 않으려 한다. 당사자도 아닌 내가 감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할 자격이 있는가. 마치 우월한 위치에서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푸는 마냥. 주제넘은 말은 하고 싶진 않다.

728x90
반응형

'글노트 > 생각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자유를 쟁취했는가  (6) 2020.06.15
부디, 지치지 말길 바라며  (5) 2020.06.11
그런 인간  (6) 2020.06.09
동정과 연민, 그리고 타인의 고통  (4) 2020.06.03
28년 째, 내가 나에게  (6) 2020.05.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