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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매트릭스(The Matrix)' 후기

by 이 장르 202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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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철학‘이라는 교양수업으로 처음 만났던 ’ 매트릭스‘를 과제로 또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기억을 흐리게 한 것인지 아니면 내 맘대로 기억을 굽어버린 것인지. 또 다른 느낌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믿어 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거짓들로 뒤덮인 세상을 인식했을 때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겠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은 아니지만 의도치 않은 변수를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낯설다. 스스로를 믿는 만큼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네오.

 

믿어왔던 것들이 무너졌지만 그것으로 또 다른 믿음을 만들어냈다.

 

 

 

“진짜 현실 같은 꿈을 꿔 본 적 있나? 그런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면?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지?”

 

 

매트릭스의 대사 중 하나지만, 이 질문으로 영화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무심코 지나 칠 수 있던 일상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사고하는 방향을 고의적으로 틀어야 가능한 일이다. 창작하는 사람들의 숙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여기가 진짜 세상이다. ‘컨스트럭트’, 로딩 프로그램이지. 지금 자네의 모습은 ‘잉여 자기 이미지’란 거야.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을 디지털화한 거지.”

“이건 진짜가 아닌가요?”

“진짜가 뭔데? 정의를 어떻게 내려? 촉각이나 후각, 미각, 시각을 뜻하는 거라면 ‘진짜’란 두뇌가 해석하는 전자 신호에 불과해.”

 

 

이 영화의 설정은 놀라울 정도로 탄탄했다. 단순하게 SF 장르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자신의 세계관을 철학적으로 녹여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머릿속을 헤엄치고 온 기분이 들었다.

 

“우리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인류는 21세기 초의 어느 시점엔가 스스로 경탄하며 AI의 탄생을 한마음으로 축하했다는 거야. 기계들의 일족을 생산해낸 단일 자의식이었지. 인류는 생존을 위해 기계에 의존해왔어.”

 

 

 

1999년에 제작된 영화지만 이 대사는 현재 진행형. 지금은 AI의 발전이 좋은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다가올 문제에 대하여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마주하고 싶은 것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을 선별하여 줄 세워둔다. 입맛에 맞춰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려고 하는 지금. 발전 또한 선별적 발전이 아니었나 싶다.

 

1999년을 살아가던 그들보다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좀 더 어리석어졌다.

 

 

 

“인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재배되는 거지.”

“네가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해?”

“운명이란 모순적일 때가 많아. 끝도 없이 널린 벌판이야.”

 

 

 

현 세상에 대한 비유일까, 다른 방향에서 본 세상일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주로 같은 방향에서 같은 곳을 보는 훈련을 받곤 한다.

 

운명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가능성이 있다. 영화 ‘트루먼쇼’에서도 보여주던 조작된 운명.

 

타인에 의해 설계된 세상일지도 모르지만 각자가 부여받은 보석들을 발견해내는 과정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아닐까.

 

 

 

“매트릭스가 뭐지? 통제야.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만든 꿈의 세계야. 우릴 통제하기 위한 거지. 매트릭스가 존재하는 한 인류는 자유를 얻지 못해.”

 

 

 

소수가 만들어낸 매트릭스에 다수가 통제당한다. 여기, 일상화된 약탈을 이제는 약탈이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다.

단연 영화 안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영화는 세상보다 좁지만 때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며 내포하기도 한다. 볼 수 없기에, 또는 너무나 많이 봤기에 무감각해져 지나쳤던 것들에 대한 재해석.

 

무감각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디지털 매체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것이 아직도 영화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라고 생각해? 자신이 ‘그’란 사실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아. 아무도 말해줄 수 없고 자신이 스스로 알지. 온몸으로 아는 거지.”

“오라클이 내게 말하길....”

“오라클은 네가 들어야 할 말을 한 것뿐이야. 네오, 너도 나처럼 곧 알게 될 거야. 갈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란 것은 영원할 수 있을까. 아니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란 것이 존재하긴 할까.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갈 것인가, 대항할 것인가. 선택할 것인가, 선택받을 것인가. 능동적이라고 해서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며, 수동적이라고 해서 언제나 좋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어쩌면 그 선택조차 설계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진다는 것은 지나고 나면 꽤 값진 경험이 되어주곤 하니까.

 

 

“매트릭스에서 죽으면 여기서도 죽나요?”

“정신이 죽으면 몸도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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