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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서의 기록/2023 🇦🇺

🇦🇺나의 첫 하우스메이트들에게 - C에게

by 이 장르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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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난 너희들이었다. 이 낯섦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불확실한 미래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서로의 삶을 어렴풋이 공감할 수 있던 우리였다. 성인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채로 타지도 아닌 타국으로 와 버텨낸 너의 시간들을 존경한다. 나는 지금 이 나이, 그러니까 나의 나라에서 내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단단해질 때까지의 시간을 지나 나름대로 견고해진 지금 호주에 도착했지만, 너는 그러한 시행착오조차 허용될 여유 없이 이곳에서 버텨냈다는 사실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더라.

타국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더라. 내가 예상치 못한 감정들이 갑작스럽게 물밀듯 밀려와 나를 삼켜버리기도 하고,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이방인의 모습은 때때로 내 스스로 주눅 들게 하더라고. 너는 어떻게 이 시간들을 견뎌냈을까. 내가 어떻게 너의 삶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너의 끊임없던 상처에 어떻게 어줍잖은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모든 게 낯설었던 그 시절, 네가 출근 준비를 하던 나에게 건넨 찌개의 온기를 여전히 기억한다. 예상치 못했던 누군가의 호의 하나하나가 이곳에서 나를 버티게 해주기도 하더라.

너에게 세상은 어떤 온도일까. 네가 이곳에서 홀로 서있는 동안 세상은 너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부디 세상이 너의 온기를 앗아가질 않길 바란다. 그 온기 그대로 너의 곳에서 남아주길 바란다.

펍에서 며칠 남지 않은 '우리'집으로 가는 길, 우리가 말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언젠가 만나자는 그 인사조 차도 가벼이 건네지 못하겠지. 우리는 암묵적으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렇게 마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으니. 하지만 서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서로의 삶을 응원하자. 그렇게 나는 너의 삶을, 너희의 삶을 응원해 볼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쁠테니 내 삶을 응원해 주지 않아도 된다. 그저 건강하게만, 행복하게만 지내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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