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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서의 기록/2023 🇦🇺

🇦🇺우리 모두 이곳에서 만나 각자의 곳으로

by 이 장르 202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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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마지막 질롱 여행이 끝났다. 세컨비자 조건을 맞추고 나서 다시 멜번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테지만 사람 일이란 게 섣불리 장담할 수 없는 거더라. 특히 외국인으로서 이곳에 머물고 있는 우리네 인생은 당장의 내일 일조차 알지 못하는걸.

유난히 이별이 많은 시기다. 우리 서로가 언젠가 다른 길을 떠나야 한다는 걸 알기에 수없이 되뇌었던 순간이었더랬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이별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매일같이 함께했던, 그리고 공유하게 된 수많은 순간들이 하나하나 곱씹어지던 밤이다. 보라색으로 물들어가던 질롱의 하늘이 유난히 야속하게 다가왔다.

한두 번 마주치고 말거라 생각했던 이들 덕분에 이곳에서의 삶을 버틸 수 있었다. 우연히 쌓여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의 시간들은 영원히 멜버른에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것조차 나의 욕심이겠지. 이곳을 떠나야 될 때가 된 것 같다던 우리의 대화는 또다시 어느 곳으로 우릴 이끌어줄까.

솔직히 말하면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그동안의 수많던 이별에 무뎌졌겠다 싶었다. 그러다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구나라는 생각에 한편으론 씁쓸해지기도 했더랬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순리이며, 함께하던 사람들이 언제까지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무던히 받아들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정말 오랜만에 마음 한편 끄트머리, 툭툭 뭉그러지던 서글픔이 나를 스쳐오더라.

아프지 않을 줄 알았다. 살짝 스쳐 따가움조차 느껴지지 않던 순간들이 하나하나 쌓여 어느샌가 따끔이기 작했다. 사람에 대해 아쉬워진 적이 얼마 만인가. 이렇게나 매일 마주하고, 함께하기 전의 시간들을 서로 꺼내어 공유하기까지 했던 그 새벽의 시간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렇게 불안했던 이곳에서 얇은 뿌리라도 내릴 수 있게 함께해 준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서글프게 했다.

이래서 누군가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게 점점 두려워지곤 한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이곳에서 만날 이들에게 정을 많이 주지 말라던 시드니 친구의 말을 이젠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을 했던 너도, 그리고 나도. 그리고 그럼에도 그러지 못했던 서로를, 서로의 슬픔을 쉽게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있던 거지.

각자의 길을 떠나는 이들도 있을 테고, 그러다 또 마주하게 될 이들도 있을 테지. 우리 각자의 추억을 품고 또다시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버틸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나의 한 페이지를 따뜻하게 칠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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