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뜻밖의 일들의 연속이다. 예상치 못한 시간을 마주해 벌써 이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저 친숙했던 공간에서 더 이상 안정감을 찾을 수 없어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을 뿐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타인과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하기 위한 마음을 먹는 것이 가능한 시간이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연애를 시작했다.
무언가에 대해 결정을 할 때에 스스로의 직감을 우선적으로 믿고 결정하는 내가, 이번 연애를 시작하기 전엔 도저히 혼자 생각하기엔 벅차 나를 가장 가까이서 봤던 두 명에게 조심스레 얘길 꺼냈더랬다. 그 둘은 비슷한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주었고, 덕분에 조금 마음이 편해진 채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더랬다.
생각 속에 파묻혀지내던 기나긴 하루가 지나고 마주한 시작에 후회는 없다. 단지 여전히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건 차차 익숙해지겠지. 나보다 더 확신을 가지고 있던 너의 모습에 조금씩 마음이 편해지고 있는 중이다. 표현을 잘하는 편이라 생각했던 나는, 나의 감정을 꺼내놓은 이후 내가 나 자신을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에 이전보다 머뭇거리고 있더라. 그럼에도 표현은 해야 아니까 노력해야지.
너랑 있으면 재밌다는 말을 건넬 때마다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런 너의 모습을 볼 때면 이걸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라는 생각에 휩싸이곤 했다. 아무래도 나의 친구들은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왔으니 이 말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단번에 알아채주었지만, 너의 언어에선 이런 표현들이 낯선듯했다. 나에겐 이것이 어떤 관계에 있어서 든 너무나 중요한 요소인데,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던 너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언어가 조금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에게 이 이야기를 또다시 꺼냈을 때 너는 또다시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봤더랬다. 그러고선 그 말을 조금 더 풀어줄 수 없냐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나에겐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낯설어진다. 곰곰이 생각하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꺼내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말이 잘 통한다는 생각 정도. 그러다 매일같이 일 끝나고 새벽을 걸으며 서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길 끊임없이 나눴더랬다. 그렇게 멜버른의 이곳저곳을 걸어보기 시작했다. 함께 있으면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은 또 어딜 가게 될까라는 기대감이 퇴근을 기다려지게끔 했다. 그렇게 너는 나의 일상이 되어갔다.
이렇게 얘길 하니 웃으며 '나 없으면 못 살겠네'라는 말을 장난스럽게 내뱉던 너에게, '없어도 어떻게든 살겠지'라는 말로 그 대답을 이어가는 나였다. '하지만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내 일상에 꾸준히 머물러줬으면 좋겠어.'
낭만 없던 나는, 너에게 '너 없으면 못 살지'와 같은 전형적인 대답을 해주진 못했지만 이 말이 너에게 무사히 닿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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