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가.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더라. 누군가 절실히 도움을 원했던 것처럼,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만한 무모함이 필요하다는 걸 왜 그땐 알지 못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책임감이었나. 단지 나는 너를 지켜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너를 옭아맬 줄이야. 아니, 사실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어쩌면 바로잡을 수 있던 수많은 그 기회들을 외면해온 죄책감이었으리라. 어쩌면 필연이었을 이 결과를 막을 수 있다 생각한 나의 오만이었을 테지.
과거의 기억은 우리의 숨통을 옭아맸다. 원하는 것을 묵살당한 채 누군가의 바람에 스스로를 맞춰갔던 너의 엄마였다. 스스로에 대해 미처 알기 전 누군가의 기대를 더 먼저 깨달아야만 했던 당신의 삶은 결국 스스로를 내려놓게끔 했구나. 그렇기에 나는 네 삶에 특별함이란 수식어가 붙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아내려 했다. 내가 혹여 너의 삶을 망쳐버릴까, 죽음조차 너에게 물려버릴까 싶어.
평범함이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특별함에 질식되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그것이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일 거라 착각했더랬다. 나는 그저 너의 엄마가 그리도 원했던 평범함이 너에겐 허락되길 원했다. 그 누구도 너에게 평범할 권리를 앗아갈 수 없다고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게 나와 네 엄마가 너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으니.
어쩌면 지난 기억에 대한 방어기제일 수도 있겠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기보다 최악의 번복만을 막으려만 했었다. 무언가를 지켜내겠다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는 걸 그땐 깨닫지 못했으니. 우리가 말하는 방식은 항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지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걸까.
가장 가까우면서도 무례할 수 있는 게 가족일까. 서로에 대한 오만이 허용되는 듯 단정 지어버리던 당신의 태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이렇게나 멀리 왔나 보다. 이미 주름진 얼굴을 비춰 보이고서도 당신과 마주할 때면 나는 또다시 그 시절 어린아이로 돌아가는구나. 결국 나는, 이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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