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장담할 수조차 없는 게 호주에서의 삶이라던가. 생각해 보니 케언즈에 온 지 2주가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이곳에서 유토와 유토 친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 길게 얘길 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보다 혼자 잘 지내는 편이라, 그리고 요즘 이리저리 한국에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숙제처럼 묻고 다니느라 인간적인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는듯하기도 하고.
날 걱정하던 너의 말이 떠올라 이곳에서도 사람들을 만나볼까 싶어 이리저리 검색해 보던 중에 우리 집 인스펙션왔던 한국 분들의 이야기를 마주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 인스펙션을 왔을 때, 인스펙션 올 분들 중에 다른 한국인분들도 있다고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그게 이분들이었구나 싶었다. 말을 걸까 말까 하다가 멜버른에서 우리 모두 다른 지역으로 가기 전, 다혜가 나에게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멜버른에서 만난 우리 모두 누군가가 먼저 용기 내어 말 걸지 않았더라면 스쳐 지나갈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그러니 언니도 케언즈 가서는 망설이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용기 내보라고. 그러다 잘 맞는 사람들 만나게 될 수 있는 거니까.
혹시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분도 내 용기를 살갑게 맞아주셨고, 이곳에 와 처음으로 한국인과 얘길 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우린 하루 차이로 케언즈에 도착했고,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한 케언즈에서 일구하는 게 쉽지 않음을 서로에게 공감해 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다혜와 진을 처음 만났을 때도 이랬던 것 같다. 그땐 얘네와 이렇게까지 자주 만나게 될 줄, 편해질 줄 전혀 몰랐더랬지. 그리고 너희를 통해 알게 된 많은 사람들도. 어색해도 만나고, 또 만나다 보니 어느새 나의 멜버른은 너희를 빼놓곤 묘사할 수 없게 되더라. 그렇기에 너희에게 고마워, 정말로.
그렇게 집으로 오는 길,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연락이 와있더라. 위치는 '퀸즐랜드 케언즈'. 설마 하는 마음에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더랬다. 'Hello'라는 인사말과 함께 나의 레쥬메를 봤다는 말을 하더라. 혹시 시간이 언제 되냐 하길래, 오늘 아니면 다른 날 약속을 잡아야 된다길래 오늘 무조건 된다고,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내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소와 시간을 문자로 보내달라 했고, 알겠다며 곧 메일로 보내준다며 내 메일 주소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설렜다. 아, 내가 2주간 수없이 건넸던 레쥬메를 누군가 봐주긴 하는구나. 멜버른에서 케언즈 도착하기 전, 자만했던 나의 모습이 이곳에 와 수많은 거절을 당하면서 너무나도 부끄러워진 지 오래. 그러다 이 전화가 어디서 온 건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구글링을 해봤지만 나오지 않았고, 방법이라 해봤자 메일 오길 기다릴 수밖에.
그러다 20분 정도 뒤에 메일이 도착했고, 위치는 해변가에 있는 호텔 1층 레스토랑이었다. 사실 여기가 5성급 호텔이라 호텔에서 연락 온 건 줄 알고 좀 많이 떨렸는데 레스토랑이라서 떨림도 좀 잦아들었다. 규모가 꽤 큰 레스토랑이지만 그래도 레스토랑인 거니까. 네시 반부터 인터뷰 시작이었지만 내 앞 시간에 인터뷰하던 사람 인터뷰가 좀 길어져서 내 인터뷰는 조금 늦게 들어갔다. 솔직히 앞 지원자랑 할 얘기가 많으신가 싶어서 조금 주눅 들어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인터뷰는 수월하게 흘러갔고,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면 꽤 좋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 기대해 볼 만한 분위기였다. 물론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섣부르게 판단하고 싶진 않지만 정말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제발 수요일에 합격 연락을 받을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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