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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서의 기록/2023 🇦🇺

🇦🇺홀로 지내는 케언즈 라이프

by 이 장르 202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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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언즈에 온 지 며칠이 지났다. 이미 인스펙션도 다니기 시작했고, 오피스 웍스에서 스무 장의 레쥬메를 출력해 이틀 동안 시티와 비치에 위치한 레스토랑과 카페에 돌리고 있는 중이다. 웃는 얼굴로 떨떠름한 표정을 마주해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쩌겠나. 일이 급한 사람은 나인걸.

이사를 도와주기로 했던 유토에게 전화를 해 우버 타고 가면 될듯하다며 호기롭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던 지난날의 나 자신은 뭐가 그리 자신만만했을까. 나를 태워갔던 우버 드라이버는 캐리어 2개, 그리고 네 개 남짓 되는 짐가방을 포함해 60kg가 훌쩍 넘는 짐과 함께 나를 집 앞이 아닌 이전 블록에 내려주고는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집 앞모습과 달라 당황스럽던 마음, 그리고 이 많은 짐을 어떻게 혼자 옮길 수 있을까라는 막연함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함께하기로 약속하기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케언즈행이었다. 당연히 홀로 견뎌내야 할 케언즈임에도 곧 너와 함께하게 될 거란 생각에 괜스레 투정 부리고 싶게 되던 하루다. 시시콜콜한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혼자 해내야 할 일조차 미뤄버리려는 게 아닌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쩌면 케언즈에서의 삶은 그리 나쁘지 않은듯하다. 아, 지금 일자리가 많이 없다는 것 빼고. 이미 많은 곳에 레쥬메를 돌렸지만 이번처럼 단 한 번도 연락 안 온 적은 없었으니. 일이 없다는 거에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할 순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시도해 보고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 줘.

너와 함께하기 전, 이곳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했다. 3주 남짓 남은 시간이 짧지도 길지도 않기에 어쩌면 생각을 정리해 볼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 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언제나 외로움만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어쩌면 이 시간을 오롯이 보낼 수 있어야 함께하게 될 그 시간들도 잘 보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조금씩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이곳에 온 이유는 세컨드 비자를 따기 위함이라지만 케언즈는 멜버른과 확연히 다른 도시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어쩌면 내가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오기 전, 내가 생각했던 호주는 케언즈와 더 닮아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혼자 있으니 확실히 여유시간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오랜만에 블로그들도 정리하고, 브런치는 조금씩 다시 시작하고 있으니 여누도 다시 연재 시작해 봐야지 하기도 했다. 블로그 정리라 해봤자 카테고라이징을 조금 손보는 정도겠지만 그래도 굳이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내 글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또 생겼기 때문이지.

아무래도 글이란 게 내가 담겨있는 거다 보니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그 결정이 아무래도 쉽진 않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더라도 서로의 모든 걸 알진 못하니 내가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담긴 글을 보여주는 것이 참 낯설더라고.

케언즈에 와서 유토를 만나 이런저런 얘길 했다. 그러다 내가 썼던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쉽지 않다는 말에 공감하던 유토였다. 본인도 곡을 만들며 가사를 쓰고 있지만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가사를 읽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던데 그 마음이 참 많이 공감됐다.

그러면 글을 쓰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글을 쓰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린 나에겐 글 쓰는 것만큼 스스로를 다듬을 좋은 방법은 없더라. 그저 아직 내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을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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