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에서부터 기획해 같이 일하던 T도 나름의 마음고생 끝에 섭외했고, 한국과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참여를 부탁해 이곳에서도 더디지만 꾸준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케언즈에서 다양한 재미를 찾는 것이 어렵다는 걸 들어왔기에 세컨을따면서 일하지 않는 시간을 쪼개 프로젝트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은 역시나 이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일과 운동, 그리고 집을 오가는 반복적 삶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일은 고되지만 다행히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다들 잘 챙겨주신다. 단호해 보였던 주방 사람들도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처음엔 서로를 오해했던 J와는 이제 너무 친해져버렸다. 분명 같은 시기에 멜번에서 있었을 텐데 거기서 한 번도 J와 못 마주쳤다는 게 신기할 따름. 같은 도시에서 와서 그런지 스트레스받는 일 있으면 빨리 멜번으로 도망가자고 하는 중. 새로 온 E와는 처음 함께 일할 때부터 너무 잘 통하고 개그코드도 잘 맞아서 이젠 얼굴을 보기만 해도 웃기더라. 웃기고 여러 사람들도 잘 챙겨주는 E는 일도 잘해서 E와 함께 일하는 날이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E의 시프트가 빨리 더 많이 늘어났으면.
이곳은 2주 페이라 세컨시간 카운팅 하는 게 애매하기 때문에 일한 시간을 메모해두는데, 지난주랑 이번 주는 합쳐서 94.5시간 일했더라. 왠지 정말 너무 힘들었다. 웬만하면 힘들다는 말 잘 안 하는데 정말 힘들더라.
사실 꽤 지치는 요즘이다. 내가 호스피탈리티로 세컨을 따는 사람들 중 잘 풀린 케이스라는 걸 안다. 또한 멜번에서부터 대체로 나의 워홀은 잘 풀린 편이라는 걸 안다. 케언즈에서 세컨따는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힘듦을 안고 살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조금 덜 힘들어지는 건 아니더라. 내 나름대로의 힘듦을 외면하기엔 그게 너무 커져버렸더라. 이곳에 꽤나 적응해 가고 있다고, 이곳에서의 삶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겼는데 생각보다 나도 참 많이 지쳤나 보다. 나름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보고 있지만 내 생활을 견뎌내는 걸 덮기엔 한참이나 부족해 보였다. 일정 시점까지 스스로가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멜버른이 많이 그립다. 멜버른이란 도시가 그립 다기보다 멜버른에서 보내왔던 평화롭고 나름대로 안정적이었던 그 삶이 그리운 것 같기도 하다. 함께 일했던 너그러웠던 동료들, 속 터놓고 말할 수 있던 친구들, 우여곡절 많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챙겼던 애증의 하우스메이트들, 일할 때 너무나도 나를 이뻐해 줬던 손님들까지도. 멜번에서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보고 싶다며 언제 돌아오냐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케언즈에서의 기억은 나에게 어떻게 남아줄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또다시 그립다며 연락하고 지내게 될까.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의 대부분이 희미해지고 좋은 기억들만 남아줄까.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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