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無知)하다는 것은 주로 부정적인 어감을 지닌 채 세상에 남겨진다. 사람들은 무지하기를 꺼려하며, 자신이 무지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부끄러움에 그것을 숨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곤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무지하다는 것은 무비판적인 수용과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무지한 태도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로 무지하다는 표현을 뭉뚱그려 붙이곤하지만, 사실 무지하다는 것은 세세하게 나누어 적용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어느 부분에서는 무지하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당연시 받아들이는 부분에 대하여, 우리는 무지한 것이다.
지배계층은 피지배층을 무지하다고 지칭하며 한심하게 여기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영원히 무지 속에 잠겨있길 바란다. 그들의 지시를 무비판적인 자세로 수용하며 찬양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피지배층이 움직일 때, 모순적이게도 지배층은 또다시 그들을 무지하다며 한심하게 여길 것이다.
'그들은 자각할 때까지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키게 될 때까지는 자각할 수 없다.'
- 조지 오웰 ‘1984’, 윈스턴
그렇다면 무지라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만 지니고 있는 단어일까. 어쩌면 무지는 무결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아직 존재하지 않다는 것, 그것은 다른 말로 가능성이다. 뽐낼 수 있는 지식이 없어 간혹 서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적어도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변화에 최적화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능동적이라는 것을 학습해본 적은 없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배계층이었다. 변화는 주로 지배층이 가진 것들을 희생을 필수조건으로 내민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변화를 경계하고, 증오한다. 가끔씩 피지배층도 함께 분노하고 거부하는 것처럼 비치곤 하는데, 그것은 피지배층이 지배층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존재하지만, 그 경계는 이전보단 흐릿해졌으며 피지배층은 그들의 무지에 주체성을 더하고 있다. 비판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재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폐쇄적 사고를 고수하는 지배층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도 되는 것일까. 그들이 언제까지나 지배계층으로 남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에만 있다.'
- 조지 오웰 ‘1984’, 윈스턴
'글노트 > 생각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에 비해, 나잇값의 비애 (2) | 2020.08.26 |
---|---|
독재의 끝 (0) | 2020.08.18 |
우리가 행복에 집착하는 이유 (2) | 2020.07.27 |
익숙해진다는 건 (2) | 2020.07.23 |
모국어란 그런 것 (0) | 2020.07.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