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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좋은 책 :: 피터 싱어(Peter Singer)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후기

by 이 장르 2020.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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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과 종차 별의 차이는 의외로 크게 다른 맥락에 있지 않다. 아마도 같은 종끼리의 차별인 것인가, 다른 종끼리의 차별인 것인가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자신의 시선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엔 주로 피라미드의 상위계층에 있다는 가정하에 인간이라는 종의 시선을 적용하는듯하다. 물론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 아닌 다른 종들의 온전한 입장이 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들을 대변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력’이라는 말이 가증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인간의 선택적 노력은, 인간이 자비를 베풀기 원하는 일부의 종에 국한되어있다. 또한 이러한 종차 별은 이전부터 현재까지 만연하게 퍼져있는 인종차별, 성차별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문제는 그들에게 이성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있는지,
또는 대화를 나눌 능력이 있는지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

 

 

고통을 경험할 수 있는 개체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용인될 수 있는가. 그 고통은 모두에게 평등한가, 혹은 상위계층의 고통과 차등되어 분배되는가. 결국 고통도 종에 따라 차별을 두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고통의 환경에 노출되는 순위 또한 인간이라는 종이 만들어낸 계층을 따라야 하는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놀랍게도 모두 인간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 인간은 얼마나 이성적인 개체이길래 어떠한 근거로, 권리로 심판자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양심이 남아있긴 한가.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적어도 이익(interests)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그러한 능력을 갖는다는 조건은 이익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논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땅과, 혹은 하늘과 더 근본적으로 가까울수록 인간이라는 종에게 차별당하기 쉬워진다. 개체 이익의 대변은 주로 땅과 하늘 그 어디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눈높이가 닿는 범위 내에서만 논의가 이루어지니 말이다.

 

 

 

그들은 연민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불쌍히 여기는 대상을 먹는다.

- 수필가 올리버 골드스미스(Oliver Gold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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