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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좋은 책 ::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데미안(Demian)' 후기

by 이 장르 2020.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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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으로 마무리짓기에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책 ‘데미안’의 상징적인 문구. 방황하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세계를 깨트리며 성장했던 싱클레어. 데미안은 그의 가능성을 본 것일까. 표식은 아마도 그런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난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연히’ 왔다.

하지만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뭔가를 간절히 원해서 발견한 것이라면,

그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의 필사적인 소원이 필연적으로 그곳으로 이끈 것이다.

 

 

우연은 필연의 연속이다. 운명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매 순간의 사건은 분명 이전의 나에게, 또는 이후의 나에게 영향을 받고, 미쳤던 일종의 필연이었으리라. 연속과 불연속 아래 놓인 줄을 타고 각자의 방법으로 인생을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무질서 속의 질서를 발견해낼 수 있다는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조종하려고 했던 것일까. 구원자의 입장이었을까, 아니면 배후자의 입장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까.

 

 

스스로 예감하거나 부분적일망정 자각해야만 그 가능성이 비로소 자기 것이 될 거네.

 

 

세상에 널린 수많은 글들과 경험들. 그중 스스로 깨어낼 알을 선택하는 것 또한 인생의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의 것이 옳고 그르다는 평가를 감히 내릴 수 있겠는가. 그에 따른 행복도 불행도 선택한 자의 몫이니 말이다. 가만히 있으면 주변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는 하나, 가라앉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어둠 속으로 가라앉지는 않도록.

 

 

그들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닌 이상에 매달려서는

새로운 이상을 세우는 자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거야.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몇 페이지가 남아있는 것을 보고 조금 당황을 했다. '작품 해설'이라니. 과제를 적어내야 하는 나로선, 충분히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고민에 고민을 반복했다. 물론, 읽고 난 후엔 분명 더욱 그럴듯한 글을 써 내려갈 수 있겠지. 타인의 시각을 내 시각인 것처럼 꾸며낼 수 있었겠지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전에 책을 덮어버렸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타인의 것으로 덮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것으로 물들여갔던 며칠간을, 그리고 스스로의 양심을 외면하는 꼴이 되어버릴까 두려웠다.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느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또 다른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일종의 여지를 남겨두는 행위라고 해두자.

 

또한, 데미안과 샹클레어라면 그랬을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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