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에 관하여

읽기 좋은 책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후기

by 이 장르 2020. 8. 25.
728x90
반응형

 

페미니즘의 교과서. 그 이름에 걸맞게 인상적이었다. 15년 전에 출판된 책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더욱이.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가정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국가가 제지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는 것. 요즘은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추세이기에 개인을 가장 작은 단위로 보는 견해가 조금씩 커지곤 있지만, 또 그 사람들이 가정을 이룬다면 최소 단위는 개인에서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는 것은 가정에서 질서를 세워 줄, 심판자 역할의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 대부분 이 역할은 아버지, 남편이 맡게 되며 그들은 가정 내에서 아무리 범죄를 저질러도 면죄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자의 권위의식은 우리의 삶 속으로 지독하게 뿌리내려져 있다는 것을,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너무 익숙한 나머지 인식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것이 폭력의 배경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

 

가정에서 일어나는 비윤리적인 행동들을 아버지가 가해자이거나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그것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범죄’의 조건에 충족되지 않는, 일종의 해프닝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가족 구성원은 가정 내의 비윤리적인 광경을 매 순간마다 목격하며 간접적으로 사회의 모습을 추측하며 자라나게 된다.

 

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 중 하나가, 어릴 때 비윤리적인 일들이 만연한 환경에서 자라 그 기억들을 ‘극복‘하고 결국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희망을 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게 무슨 문제가 되냐는 생각이 들 테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것이 ’ 미디어‘라는 매체에서 뿜어내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미디어의 순기능은 정보의 보편화지만 역기능 또한 마찬가지로 보편화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을 향한 폭력은 일상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미디어를 접하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심어주게 되면서 모순적이게도 가해자들의 죄의식을 덜어주는 꼴이 되어버린 것. 가해자가 말하길, 자신은 일상적인 행동, 보고 들은 것을 실천한 것뿐이니까.

 

한국사회는 남녀평등에 찬성한다면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세기의 역적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현상이 자주 목격되곤 한다. 남녀평등과 페미니즘.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데 하나는 인정하고 하나는 싫다는 것. 입맛에 맞는 것은 취하되, 쓴 것은 뱉겠다는 말. 그들의 말을 빌려보자면, 남녀평등은 옳지만 페미니즘은 틀린 것이라고.

 

 

동물의 세계에 먹고 먹히는 자가 있다면,

인간 세계는 말을 만드는 사람, 즉 정의하는 자와 정의당하는 자가 있다.

언어는 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차별의 시작이다.

 

 

정의 내리는 자와 정의 내려지는 자, 근본적인 불평등이 자신들의 무의식 중에 자리 잡은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갈길이 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의는 당사자 스스로에게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부디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남성의 삶이 인간 경험의 일부이듯,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도 인간 역사의 일부임을 호소하는 것이다.

 

 

남들에게만큼은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불편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인이 불편하다고 해서 타인에게 자신의 불편함을 전가할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타인은 타인이다.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한쪽이 그것을 모두 짊어지고 있는 모습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주의보다 이기주의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매스큘리즘(masculism). 살면서 이 단어를 한 번이라도 접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이 단어를 알게 되었다. 심지어 검색창에 두세 번 정도 검색한 후에야 이 단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내세워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절실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예상이 되겠지만, ‘남성주의‘라는 뜻이다. ’ 여성주의’인 페미니즘(feminism)과 같은 선상에 놓인 단어라는 것이다.

 

같은 뜻으로, 성별에 대한 억압을 타파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 또 다른 하나는 유추를 통해 그럴싸하게 의미를 알 수 있는 단어이다. 차이점은 여기서 나온다. 남성주의를 의미하는 매스큘리즘이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다는 것으로부터.

 

함께 사는 세상이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때마다 점점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인걸.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