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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좋은 책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페스트(La Peste)' 후기

by 이 장르 202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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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재앙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재앙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란 비현실적인 것이고 곧 지나가 버리게 될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앙이 늘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으로 계속 진행되며, 사라져버리는 것은 오히려 인간들인 경우도 있다. 특히 휴머니스트들이 가장 먼저 사라져버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시민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잘못을 더 많이 저지른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겸손하게 살지 못했을 뿐이다. 그들은 아직 모던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므로,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예상했다. 그들은 사업을 계속했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으며, 각자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나 여행, 토론 같은 것들을 박탈해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어디에선가 많이 봤던 장면이, 1947년의 소설 속에서 묘사되고 있었다. 그때의 페스트도, 지금의 코로나도. 이미 오래전에 페스트를 겪어본 그들의 자세는 이번 코로나 때도 변함없었다. 그들은 온전한 휴머니스트들이었나,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은듯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적인 세상을 노래하면서도 반대편으로는 인종차별을 자행했던 그들에게. 여전히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고있구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은 변함이 없다. 변함이 없다는 말은 대체로 좋은 의미에서 사용되곤하지만, 여기서만큼은 예외로 두어도될듯싶다. 그들은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결과를 도출해낼 가능성이 높으며,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배우지만 딱 거기까지. 그것이 우리가 한때 동경했었던 그들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몇몇 집에서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전에는 그런 일이 생기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서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불안감에 시달리다 보니 사람들 마음도 단련이 되어서, 마치 그것이 인간의 타고난 언어인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그 신음소리를 그저 스쳐 지나가거나 그 곁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렇기에 유감스럽게도 불행에도 쉽게 적응해버리곤 한다. 사실 이것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한번 불행에 물들어버리고 나면 그에 파생된 무기력에도 함께 물들어버릴수도 있다는 것.

인간은 게으름을 기본값으로 설계되어 태어났으며, 의식하지 않으면 그대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을 우리가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 지금 현재,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 사람의 위치도 정해지곤 한다. 여기서 표현한 하는 위치라는 것은 단지 사회적 위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인간적 위치를 말하며, 사회적 위치는 그중 일부분일 뿐이다.

 

 

 

 

나는 그 동정적인 열정을 이해한다. 재앙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 사람들은 늘 약간의 미사여구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재앙이 시작될 때에는 아직 습관을 잃어버리지 못해서 그런 것이고, 재앙이 끝날 때에는 이미 습관을 다시 찾아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불행한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실에, 즉 침묵에 익숙해진다. 좀 기다려보자.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된다 했던가. 그렇게 지나쳤던 재난이 얼마나 많았던가. 모순적이게도 역사의 중요성을 외치면서,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부지런히 잊어가는듯하다.

인간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하는경향이 있다. 기억이 불온전하기 때문인지, 혹은 그 불온전함을 이용하는 것인지. 결국은 인간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기억할 테니까.

 

 

 

 

 

리 외는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함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런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왜냐하면 그는 즐거움에 넘치는 그 군중이 모르는 체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온갖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다시 말해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 그 균은 수십 년 동안 가구나 옷들 속에서 잠든 채 머물 수도 있고, 방이나 지하실, 여행용 가방이나 손수건, 그리고 서류 뭉치 같은 것들 속에서 끈기 있게 기다리다가,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페스트가 또 쥐들을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낸 후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의 오만에 대한 대가. 이들에게 페스트는, 우리에게 코로나는, 그저 한차례의 역병일 뿐일까. 이것이 시작이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은 진정 나만의 것인지.

분명한 것은 역사 책에 적힐만한 규모의 사건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 세상이 흘러가고 시간이 흐르듯, 그때는 맞고 후에는 틀린 것이 분명 드러날 것이다.

 

 

 

 

제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각자 자신 속의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세상의 어느 누구도 페스트로부터 무사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에요.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 조심해야 하죠. 잠깐 방심하다가는 다른 사람의 얼굴에 숨을 내쉬어서 그에게 전염병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적인 것, 그것이 바로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과 청렴결백, 순진함 등은,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다면, 바로 인간이 가진 의지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코 멈춰 서는 안 될 의지의 결과물이오. 올바른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을 전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긴장을 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결코 긴장을 풀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의지와 긴장감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요, 리 외 선생님.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한층 더 피곤한 일이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겁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약간씩 페스트에 걸려 있으니까요. 바로 그런 이유로 페스트 환자 노릇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몇몇 사람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체험하고 있는 거예요. 죽음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그들을 해방해 줄 수 없을 피로감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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