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럴 때가 있다. 듣는 음악에 따라 기분이 바뀌는 그런 날.
글을 쓸 땐 주로 단조로 이루어진 곡을 자주 틀어놓게 된다. 글을 쓰는 동안 차분하게 감정을 유지할 수 있기도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듯한 나의 글은, 주로 살짝 그늘진 음악이 겹겹이 쌓여 완성되곤 한다.
하지만 사람 기분이란 게 일정한 것을 오랫동안 유지하기가, 아직 나에겐 어렵기도 하고. 그래서 내 감정이 느티나무 끄트머리처럼 축 처져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끔 경쾌한 곡을 꾸역꾸역 찾아 듣곤 한다. 이렇게 가끔 통통 튀는 리듬을 듣고 있자면, 지금처럼 시답지 않은 말을 줄줄이 늘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하던걸 멈추고 아무 말이나 끄적이고 있는 지금 내 모습.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중에, 지금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되었을 때, 확 트인 풍경을 창밖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살게 되면 좋겠다고. 내가 좋아하는 원두를 골라 커피를 담아두고, 웅장한 커피머신 소리가 멈출 때까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몇 개 골라 담아 간단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리고 그동안 컵에 얼음 가득 넣어 커피를 넣고 한입 크게 들이켜면, 매일 아침이 주말 같을 텐데 말이야.
돈을 내지 않아도 기분 좀 낼 수 있는 그런 날. 가을 아침,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이전보다 조금은 차가워진 공기에 기분 좋은 몸서리를 칠 수 있는 그런 날. 의외로 소소한 그런 순간들이 모여 하루를 조금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준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런 게 믿기지 않기도 하고.
어쩌면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나 싶다. 당장 눈앞에 있는 파란 하늘 위 구름 몇 개가 이쁘게 떠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게 뭐 별건가. 비 오는 소리 들으며 따뜻한 홍차를 한 입 들이키고는 나도 덩달아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굳이 깨지기 쉬운 찻잔에 찻잔 받침까지 꺼내어 차를 마시는 이유가 뭐냐고 묻겠지만, 그냥.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정말 그냥. 이러면 좀 더 기분이 좋잖아.
사소한 물건 하나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면, 가끔은 이런 귀찮은 것도 괜찮지 않을까.
'글노트 > 생각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관의 굴레 (0) | 2020.09.10 |
---|---|
일기를 쓰려는데 아무 일도 없었어 (0) | 2020.09.07 |
나이에 비해, 나잇값의 비애 (2) | 2020.08.26 |
독재의 끝 (0) | 2020.08.18 |
무지와 가능성, 그 어디즈음에서 (4) | 2020.08.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