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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좋은 책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이방인(L’Etranger)' 후기

by 이 장르 2020.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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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같은 종족이란 이유만으로 함께 섞일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는 화합인가, 혼합인가.

 

나다움, 그리고 너다움.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는 내려놓아야 하는, 외부 요소들과의 화합. 혹은 화합을 위해 내려놓아야 하는 나 자신. 무엇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언제나 마음 한편에 남아있겠지.

 

그렇다면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평생에 걸쳐 나 자신으로 살아온 나조차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말이야.

 

사람이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늘 부풀려서 생각하기 마련이다.

실상은 모든 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사실을 나는 시인해야 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까지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각자의 세계는 각자가 경험한 만큼, 딱 그만큼이라는 것이다. ‘나’의 세상도, 어머니란 존재도, 딱 ’ 내‘가 느꼈던 모습까지만 ’나‘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이 슬픈 것인가, 어머니의 죽음에 슬픈 감정을 강요하는 세상에 대하여 느끼는 서러움인 것인가. 사회가 원하는 공식에 맞춰 인간을 욱여넣는 과정에서 생기는 상처를 외면하기도 하고, 혹은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다수는 이런 과정을 거쳤으니 약한 소리 하지 말라며 다그치기도 하고. 이런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의외로 사회는 이성적이지 못한 것 같기도.

 

아마, 예외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나와 세계가 무척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려면 내게 남은 소원은 오직 하나,

내가 덜 외로워하도록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그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와

증오에 가득 찬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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