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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관하여

읽기 좋은 책 ::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84' 후기

by 이 장르 2020.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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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사용하는 언어는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언어로서 우리의 사고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 죄를 범하는 일이 문자 그대로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 거라고.
사상을 표현할 단어가 없을 테니 말일세.
앞으로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하게 한 단어로 표현될 거야.
뜻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다른 부수적인 뜻은 제거되어 잊히게 될 거네.
해마다 단어가 점점 줄어들면 의식의 범주도 조금씩 작아질 테니까.
물론 지금도 사상 죄를 저지르는 데에는 어떤 이유도 변명도 있을 수 없어.
단순히 자기 수양과 현실 제어의 문제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그럴 필요조차 없을 거야.
언어가 완벽해지면 혁명도 완성될 테니까.
신어는 ‘영사(영국 사회주의)’고, 영사는 신어일세

- '1984', 사틴

 

언어가 지니고 있는 표현 가능성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세상의 넓이를 결정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생각보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지니고 있는 것, 혹은 그러한 단어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닐까 싶다.

 

 

2050년까지는, 어쩌면 그전에, 구어에 대한 지식은 모두 사라질 거야.
자유의 개념이 없어졌는데 ‘자유는 구속’이라는 표어가 어떻게 있을 수 있겠어?
모든 사상적 분위기도 달라질 거야.
사실상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사상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을 거야.
정통주의는 생각하지 않는 것, 바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뜻하거든.
요컨대 정통주의란 무의식 그 자체야

- '1984', 사틴

 

어떤 가치관을 통해 비추느냐에 따라, 모든 글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주관적으로 쓴 글 위에 또 다른 주관을 덮어 새로운 주관이 탄생한다.

 

글이 주관적인 요소를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통해 무언가 글로 옮겨 쓰는 과정에서 당연스럽게 그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게 된다. 보이는 그대로를 적어낸다 하더라도 어느 곳을 볼 것인지, 언제 볼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그것을 적어내는 주체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구도를 잡는 것은 오롯이 인간의 주관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날 거요.

- '1984', 오브라이언

 

누군가의 어둠, 그리고 또 다른 이의 어둠. 같은 언어를 사용하니 서로가 생각하는 어둠이 얼마나 겹쳐져있는 것인지, 혹은 비슷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늘 어둠 아래 만 있었기에 어둠을 분별해낼 수 없었던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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