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순간을 꿈꾼다. 그것은 분명 모든 인간의 본능이지만,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본능을 숨기고 살아가곤 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도 볼 수 있었던 변명하는 권력자, 그리고 이익의 대변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증오의 대상, 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인물, 그리고 불만을 누른 채 묵인하는 인물들.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 맞이할 수 있는 왜곡된 권력의 고정적 구성요소.
나폴레옹이 스노볼을 내쫓을 때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완벽할 수 없다. 결국 나폴레옹의 말에 모순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이용된 권력유지 도구, ‘스노볼’. 모든 사건은 스노볼로 수렴했다. 그들은 언제나 스노볼을 증오했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를 영원불멸의 존재로 남겨두게 된다. 나폴레옹에게 스노볼이란, 권력유지를 위해 이용가치 있는 도구일 뿐이었다.
사실 증오의 대상은 스노볼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농장 외부에 존재하는 요소는 두 종류뿐이었다. 현재 증오의 대상이거나, 앞으로 증오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 인간은 그들의 영원한 적인듯했지만, 사실은 인간을 동경하고 인간의 위치에 서게 되길 원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어쩌면 증오는 잉여 에너지를 소모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감정이다. 잉여에너지를 표출한 후엔 체제에 반항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 결국은 이 기이한 체제를 유지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준다.
장기적인 잉여에너지 약탈은 독재를 이어가는 데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집단에 무기력함을 학습시키고,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소수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한다는 것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덫을 놓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좌절을 학습시킴으로써 독재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나폴레옹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권력을 이어간다.
독재는 인간들의 권리를 먹고 자란다. 결국 스스로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혹은 자신의 권리를 약탈당하는 것이 무뎌지지 않으려면 그들이 주장하는 당위성에 동화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로 스스로 권력을 데우기 위한 땔감이 되는 것을 자처하지 말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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