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동물 10 중 4, 당신들 인간. 10 중 6, 당신들이 키우는 가축들.
나머지 쥐꼬리만큼의 야생동물들은 쫓겨다닌다.
그것도 모자라 당신들은 숲을 불태우고 약탈하다가 바이러스에 걸렸다.
인간이 품는 욕심마다 지구의 암으로 번지고, 인간이 건드리는 동물마다 좀비로 변한다.
팬데믹? 인간 씨, 농담도 잘하시네. 1760년부터 당신들은 팬데믹이었다.
우리의 운명은 정해졌다. 절멸의 절벽을 향한 고속 질주.
자, 이제 죽을 시간. 가는 마당에 유언을 남기겠다.
인간은 똑똑해지길 원했고, 원한다. 현재 인간은 충분히 똑똑해졌고, 이기적인 존재가 되었다. 파괴를 즐겨하며, 그것에 자부심을 가진다. 혹은 누가 얼마나 파괴적인가에 경쟁심을 느끼기도 하는 듯하다. 우리에겐 트로피, 다른 종에겐 생존의 위협.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이란 이유만으로 그들을 파괴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걸까. 인간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권리이길래.
나는 박쥐다.
나는 니파,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인간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나에게로 왔다. 그 뒤로 많은 것이 파괴되었다.
니파 바이러스 때는 백십만 마리의 돼지가 사살되었다.
사스 때는 사향고양이가 끓는 물에 던져졌다. 코로나 때는 밍크와 천산갑이 죽임을 당했다.
병이라도 번질라치면 산채로 파묻고, 찔러 죽이고, 태워 죽이는 인간들.
그렇다면 코로나가 번진다는 이유로, 이전과 같이 인간을 다 잡아 죽일 것인가.
제국주의, 인종(人種) 차별은 최악으로 여기면서, 인간(人)을 제외한 종(種) 차별에는 쉽사리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질병이 생기면 어김없이 인간으로부터 고통받는 ‘중간 숙주’. 최종 숙주이자 그 근원인 인간은, 산채로 파묻히지 않았고, 사살되지도 않았으며, 끓는 물에 던져지지도 않았다. 찔리거나 태워져 죽임을 당하지도 않는다. 혹시나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인간, 즉 선택적 평화나 평등 따위를 지향하는 인간으로부터 질타를 받았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행위를 한 자의 인간이라는 지위를 박탈하려 했겠지. 자신들은 그러한 인간과 분리되어 보이길 원하면서, 그들과 함께 같은 인간으로 묶일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강한 듯 하다. 이러한 인간 우월주의 성향은 모든 것을 인간 중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자체적 근거가 되며,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되도록 만들어버린다. 살인을 향해서는 소리를 지르는 인간들도, 동물을 죽이는 것에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하며, 가축의 생명은 그저 인간의 일용할 양식, 혹은 심심풀이 해결수단으로 여기기도 한다. 학살의 동기는 단 하나, 알량한 순간의 기쁨을 위하여.
이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인간주의. 인간이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지 않듯, 지구 또한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당신은 마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처럼 나를 짓밟는다.
당신은 내가 생명이라는 것을 잊은 듯하다. 우리의 운명은 정해졌다.
절멸의 절벽을 향한 고속질주.
자, 우리는 간다. 당신들보다 먼저 간다.
’ 인종청소’라는 이름의 나치 학살과 가축의 집단학살. 단지 학살의 대상의 차이일 뿐이지만 두 가지의 경우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소름 돋을 정도로 다르다는 것. 어쩌면 인간은 동물에게 철저히 나치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인간은 선택적 나치즘을 통해 그들의 자애로운 모습에 심취해 자위하기도 하며, 자신에게 주는 보상이라며 알량한 한 끼의 기쁨 따위로 살생을 저지른다. 그러한 살생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간의 잔인함을 제한시키는 요소는 세상에 그 어느 것도 없다. 세상의 주인인 듯 군림하던 인간은 앞으로도 이전과 같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순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신이시여, 좁은 철장에 갇혀 똥 만드는 기계가 되어버린 내 친구들을 구원하소서.
도무지 변할 줄 모르는 인간들에게 사스 같은 전염병을 또 보내주시고
파괴적인 이들을 절멸케 해주소서.
왜 저는 인간에 의해 바이러스의 숙주로, 고기로, 고통과 두려움 속에 죽어가야 합니까.
신이시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느 동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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