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건 가벼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어딘가에서 뜬금없이 나타났던 생각을 주워 들었지. 근데 그게 생각보다 무겁더라고. 이왕 들어보기로 한 생각을 손에 꽉 쥐고 들어 올렸는데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그걸로 낑낑댔는지. 남들은 툭툭 잘만 들어 올리던 생각들이, 나에게만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괜스레 울적해지는 하루다.
문득 내 인생에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 같아. 이런 기분이 들 때마다 밀려오는 외로움, 그리고 묘한 두려움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더라고. 특히 새벽엔 더욱이. 아마도 이런 게 새벽 감성으로 불리는 건가 봐. 어떨 땐 이불 먼지 털어내듯 속마음을 모두 털어내고 싶은데, 어른이 된다는 게 모순적이게도 내 마음을 포기하는 과정이잖아.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견뎌내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진다는 뜻 같기도 해. 그래서 다들 어려지고 싶어 하는 걸까.
사실 어른이 된다는 게 무섭기도 해. 나이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늘어가는데, 나는 늘어나고 있는 숫자의 무게를 견딜만한 사람이 되어있을까 고민되기도 하고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듯 살아가고 싶지만, 나이테가 늘어날수록 그게 그리 좋은 건 아니니까.
아무렴 어때. 잠시 이겨내지 못하면 좀 어때.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길다더라. 그러니까 움직 일기 운조차 없을 때는 잠시 쉬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좀 놓치면 어때, 그다음의 무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달려야 할 시기도 분명 정해져 있겠지만, 쉬어가야 할 시기도 분명 정해져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해. 달려야 보람을 느낄 수 있겠지만, 쉬어야 또다시 움직일 수 있는 거니까.
나에게 맞는 진통제를 찾아내는 것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 물론 그렇게 찾아낸 진통제도 언젠가 내성이 생겨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인생의 기본값은 고통이라지만 그만큼 우리가 그걸 버틸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이 우리 곁을 지켜주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든, 무얼 하고 있든, 어떤 어려움이 우리 앞에 놓여있든 말이야.
너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려 하지 마. 그들은 그들의 속도에, 그들의 타이밍에 맞게 가고 있다는 걸, 사실 너도 알고 있잖아. 세상 속에서 남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너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너 자신이라고. 각자의 삶 속에서 함께하는 것뿐이지. 그러니까 너 또한 너의 속도, 너의 타이밍이 있으니 조금만 더 자신을 보듬어줬으면 해.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이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지.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우주가 모든 것을 들어주진 않더라. 그렇게 손에 있던 것도 다 놓치는 느낌이 들 때, 어딘가에 난 구멍으로 마음이 새고 있는 기분이 들더라고. 근데 말이야, 손에 꼭 붙들고 있던 것이 하나둘 빠져나간다는 건, 다음에 올 나를 그리고 너를 채우기 위함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다시 말해, 새로움을 맞이할 준비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 과정이 한편으론 공허할 수도 있겠지만, 괜찮아. 우리는 분명 더 나아지고 있을 거야.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생각보다 쉬울 거란 생각을, 꽤 어렵게 했어. 그러고 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 들 일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우울함을 견뎌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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