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노트/생각노트

범 내려온다

by 이 장르 2020. 11. 5.
728x90
반응형

그렇게나 사람들이 두려워서 외면했던 범이 내려온단다. 하지만 사람들이 찾아주지 않아 지독히도 외로웠던 범은, 자신을 찾는 목소리를 잘못 듣고 내려오면서도 행복해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어쩌면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범은, 어쩌면 여느 사람보다 나은 동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의 옛이야기에 범을 넣으려 했을 수도 있고. 매번 등장해 친근하기에 그만큼 두려움을 줄 수 있었던 범이었다.

 

범은 열등감이 없었다. 인간을 사랑했다 말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향한 인간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고, 두려움을 이용해 대접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지닌 이점을 악용하지 않았다. 범은 결코 인간에게 자신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인간들도 자신을 온전히 받아줄 때가 오겠지 하며 인간의 마음에 자신을 받아줄 공간이 생기기를 기다렸다. 그렇기에 범에게는 ‘호선생’이라는 부름이 꽤나 반갑게 느껴졌을 것이다. 드디어 인간들도 자신이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했던 것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구나 생각하며 행복해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본능처럼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습성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종에서도 드러난다. 더 나아가 인간과 무생물 사이에서도 이러한 요구는 일방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간은 인간을 위해 세상을 ‘발전’ 시켰다. 인간의 식사를 위해 동물을 ‘가축화’시켰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환경을 ‘이용’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당연하게 지불하지 않았으며, 지불하였다 해도 그것은 인간과 인간 간의 거래일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인간에게 맞추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하지만은, 사실 더불어 살아가자는 대상은 인간에 국한된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가 그러한 것을 은연중에 인지하고 있다.

 

인간은 그렇게나 이기적인 존재다. 자신을 찾아준다는 것 자체에 기뻐 내려오던 범에게도 총구를 겨누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에게 범은 생명이 아닌, 그저 값어치 나가는 장신구일 뿐이라는 것을, 범은 알고있을까. 인간이 온전히 받아들인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고있는걸까.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