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노트/생각노트

팬데믹이 끄집어 낸 민낯

by 이 장르 2020. 11. 20.
728x90
반응형

"남자라면 마스크를 쓸 수 없지!"

-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 '팬데믹과 마스크 쓰지 않는 남자들'

 

 

우리가 은연중 사회로부터 강요받았던 백인, 그리고 남성의 권력. 그들은 다른 부류와 다를것이라는 편견이 이번의 팬데믹으로 무너졌다. 문명적으로 발전한것처럼 비춰졌던 유럽은 자신의 자유를 지킨다는 이유로 타인의 삶을 자유로이 침범했다.

남성이란 요소가 단지 성별로만 작용한것같지만, 사회적으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에 고정적 의미를 부여해 사회적 편견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편견은 분명 오래전부터 작용해왔지만 수면위에 끄집어내놓은 것은 팬데믹이었다.

팬데믹은 사회가 덮어온 수많은 문제들을 단번에 수면위로 들어올려버렸다. 외면하며 개인에게 책임을 지워냈던 사회의 문제처리방식에 이제야 관심을 갖기시작한게 꽤나 늦은감이 있지만,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외면당했을 부분이었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팬데믹은, 인간의 이기심이 극에 달하며 수많은 문제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며, 사회를 무질서의 상태로 만들어 그동안 인간이 외면해왔던 문제를 드러내기위해 등장하지않았나 싶기도하다.

 

 

"절반 가까운 남성이 홈스쿨링을 거의 전담한다고 말한다. 이에 3퍼센트의 여성이 동의한다."

-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의 기사 中

 

 

당연스러운듯 여성보다 남성이 가사노동의 기준치가 낮다. 다시말해 그들 스스로 만족하는 가사노동의 임계치가 낮다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가사노동에 관심이 없는지, 혹은 가사노동을 실제로 해본 경험이 없는지 나타난다. 팬데믹 이전까지는 남성들이 가사노동을 외면하고 회피하며 여성들에게 당연스레 떠넘기는것이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페미니스트들이라 불리우는 이들은 이유없는 비난에도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했지만, 사회는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이기적'인 행동으로 치부해버리고는 맘껏 비웃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에겐 팬데믹 시대가 도래했다. 사회에서 일부 담당하던 부분이 가사노동에 편입되었고, 이러한 시스템이 장기화되어 끝날기미조차 보이지않자 여성들을 갈아넣었던 가사노동의 문제는 수면위로 드러나기시작했다.

가정이 존재하지않는 사회는 없다. 사회가 존재하기위해서는 현재 존재하는 가정이 버텨주어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팬데믹 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정의 가중치들이 모두 여자에게 집중되었다. 결국 사회의 기반을 유지하기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사회의 기반이라는 이름으로 깔아뭉개졌으며, 그럼에도불구하고 자신의 의견한번 내지못했던 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기형적인가 생각해본다. 이러한 상태로 눈가리며 몇천년을 유지해냈다는것이 놀라울뿐이다.

 

실질적 의미에서 모든 생명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운명이라는 단 한벌의 옷으로 연결되어
상호관계의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망 속에 얽혀 있다.
무엇이건 한 사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모두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 마티 루서 킹 주니어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고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위해 인간은 꾸준히 노력을 하며 그에따른 보상을 받으며 살아간다. 인간에게 어떠한 노력에대한 보상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 꽤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여성의 가사노동은 사회와 사회구성원에게 충분히 인정받지못했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여성노동의 비하가 앞으로 꾸준히 이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우리사회는 결국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것인가. 여성들이 어떤 결정을 하게될지 불보듯 뻔하지않는가. 인정받지못하는 노력은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지에서 당연스레 제외될것이다. 결국 가사노동을 선택하지않기위해 근본적으로 결혼이란 선택지를 지워버릴것이다. 이것은 여성들이 이기적이기때문에 도출된 결과가 아니다. 사회가 자초한, 언젠가 마주하게될 당연스러운 결과일뿐이다.

앞으로 새로운 가정이 생기는 속도보다 기존의 가정이 깨지는 속도가 더 빠르게 진행될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며, 이전으로 돌아갈수있는 방법은 없다. 단지 이 현상의 속도를 조금 늦출수있는 방법은 사회적으로 가사노동을 인정하고 그에따른 대우와 대가를 설정하는것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가 팬데믹을 겪고 있다는 것과, 그 팬데믹의 경험이 인종과 계급의 구분선에 따라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가부장제 팬데믹이라고 불릴 법한 것과도 서로 교차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가부장제라는 이름의 팬데믹은 질병의 확산과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행동을 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팬데믹을 훨씬 더 악화시켰고,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늘 하는 방식대로 폭력을 휘두르고 돌봄의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여성을 응징해왔다.

여기 미국에서, 인구 비례와 불균형하게 흑인과 갈색 인종이 많이 죽고있는 팬데믹의 와중에 무제한의 자유를 험악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백인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부장제 팬데믹은 악의에 찬 백인성과도 상통한다. 좋은 소식은 코로나19의 경우와 달리, 젠더 문제에 대해서는 치료약이 무엇인지 우리가 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페미니즘이다. 지금 남성용 초대형 사이즈의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페미니즘은 인권의 부분집합일 뿐이며, 코로나바이러스와 여타의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의 질문에는 보편적 인권과 절대적 평등이 응답할 것이다.


-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 '팬데믹과 마스크 쓰지 않는 남자들'

 

 

728x90
반응형

'글노트 > 생각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 그리고 변화  (0) 2020.11.30
숨을 쉴 수가 없어  (4) 2020.11.27
좋아하는 영화, 그리고 장르  (5) 2020.11.19
탈성장, 그리고 돌봄의 책임  (0) 2020.11.09
범 내려온다  (0) 2020.11.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