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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기억 그리고 변화

by 이 장르 2020.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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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선생님이 언젠가, 유럽이 이룩한 과학과 기술을 '보편'으로 규정하는 유럽중심주의를 '강자의 울타리'라고 말할 때 논지가 명쾌해서 받아 적기까지 했다. 제국주의 유럽은 주변부를 자기 시장 속으로 흡수하면서 상대방에게 '세계적 보편성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약자가 그것을 거부하면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를 상실하고, 받아들이면 '정체성'을 상실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세계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계질서에서 낮은 단계에 있는 나라들은 그 보편성이라는 울타리에 참여함으로써 소외를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보편주의란 사실상 자본주의적 세계질서 속에서 기득권과 불평등을 유지하려는 측의 슬로건에 불과할 뿐이다.

- 김형수 '미륵의 눈빛이 떨어진 자리'

 

우리는 타국을 침범하지않고 우리의 속도로 고유의 문화를 유지했다는 이유만으로, 훗날의 우리는 스스로 우리문화를 하대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학습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우리는 그동안 세계의 문화를 서열화하는것을 당연스레 받아들여왔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아시아의 문화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방법을 그 어디에서도 자세하게 배우지못했으며, 서양이 우선적으로 만들어둔 '스텐다드'를 필터링하지않고 그대로 가져다 적용했다. 오랜기간동안 제국주의에 물들어있던 서양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려했기에 문화를 서열화하는 태도또한 그대로 받아들여버렸다. 새로움을 개방적인 태도로 받아들일줄아는것이 우리의 장점이라면, 새로움을 너무나 그대로 받아들인다는것이 우리가 보완해야할 태도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어갈때에 상대방에 대한 인상은 처음 상대방을 마주했을당시의 그 순간에 머물게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어린시절의 친구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변해도 그들을 잘라내기는 커녕 그들에게 나의 곁을 내주기위해 여러번의 기회를 주려고하기도한다. 우리의 기억속에 그들은, 그때 그시절의 모습으로 남아있기에 지금의 변화를 받아들일수없는것이다. 이것은 비단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만 적용되는것이 아닌듯하다. 우리의 타국에 대한 인상은, 대부분 우리의 인생에서 그 국가를 처음 접했을때의 그모습이 그대로 이어진다. 미디어에서든, 실제 접해본 경험에서든말이다. 어느 국가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처음 마주했던 그곳에서 멈춰있다.

하지만 우연한 순간에 세계적으로 코로나라는 것이 퍼지게 되었고, 우리는 이로인해 전세계적으로 타국에 대한 인상을 갱신할수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그들은 더이상 그 모습이 아니었고, 어느부분에서는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되지않는 순간또한 존재했다.

서구문학에 피를 수혈한 남미의 작가들, 미겔 앙헬 아스뚜리아스나 가르시아 마르께스,
뭐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거 말이야.
그들은 수백년동안 제국주의에 짓밟히고 자기 언어도 잃고 혈통까지 섞이고 말았어.
백인화된 거지. 그래서 근대고 전근대고 간에 자기들의 과거를 불러올 재간이 없어.
또 그래서 현실이 추상화되고 안개가 피어나듯이 신화적인 분위기도 생기는데 우리는 달라.
동학이고 뭐고 다 기억이 있잖아. 그러니 민담이 가능하다고.

- 소설가 '황석영'

그럼에도불구하고 다행히 한국 고유의 문화를 지키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인 탓에, 우리의 문화가 지금까지 우리의 곁에 남을수있게 되었다. 자국의 역사보다 수험과목을 더 중요시여긴탓에 한국사를 그저 고리타분한 이야기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역사를 알지못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을 점차 느끼며 한국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또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필수과목인 한국사를 섬세하게 접할수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현재의 젊은세대들이 한국의 과거를 접하며 서로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며 수호하려는 행보는,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측면에있어 지금보다는 밝은 앞날을 기대해도되지않을까 싶다.

하지만 밝다는 것이 사람 자체가 밝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세대들은 각자 고립되어 각자온전히 스스로의 삶을 되새김질하며 자신이 원하는바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시간을 보낸다. 모순적이게도 이러한 고립은 젊은이들의 그늘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모여들어 빛을 내는 기이한 형태가 된다. 이전까지 이러한 빛은 소수의 사람들, 주로 예술을 추구하는 부류에서 발견되었지만, 현재는 다변화하는 세상에서 휩쓸리지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적립하기위해 노력하는 젊은세대에서도 찾아볼수있게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에게는 하나의 '멋'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것뿐만아니라 자기자신을 마주하는 것에서도 빛이날수있다는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사회가 점점 성숙해간다는 의미일수도 있겠다.

집회에서 헤어지면 그들은 모두 혼자가 되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 그들 각자가 혼자가 되었다.
세계란 원래가 우주처럼 무심하다. 괴괴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다.
무료하고 가치 없는 일상이 그들 모두를 무너뜨렸다.

- 황석영, 소설 '철도원삼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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