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과거 경험했던 위기나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
트라우마라는 주제는 언젠가 다뤄보고 싶은 주제 중 하나였다. 어떠한 이유가 명확히 있기에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기보단, 인간을 입체적으로 보기 위한 시도 중 하나였다.
우리는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하나 이상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 그 크기는 제각각이며, 영향을 주긴 하나 일상생활이 가능한 트라우마 그리고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쳐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트라우마로 크게 두부류로 나뉜다.
트라우마는 위기와 공포에 학습된 경험이다. 순간적으로 강렬하게 학습된 경험일 수도 있고, 오랜 기간 걸쳐 스며들 듯 학습된 경험일 수도 있다. 그 순간 혹은 환경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이전의 일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 트라우마의 발생 원인이 된다.
트라우마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나의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다른 의미로 고통스러웠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일상과 환경은 좋지 않거나 불쾌한 기억을 오래 간직할수록 고통스러워 나중에는 분노로 일상생활이 고통스러울 정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좋지 않은 기억을 쉽게 잊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훈련시켜왔다. 아무래도 고통을 빨리 잊음으로써 고통에서 회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이것이 자기방어의 한 종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러한 성향이 된 것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가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만들어진, 불편함을 남들보다 빠르게 지워버리는 습관 때문에 트라우마라고 말할 거리가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써 내려가고 있던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의 깊이에 한계가 생긴듯했다.
과거에 경험했던 위기와 공포가 훗날 그 대상 혹은 그와 비슷한 대상에게 향한 분노로 자리 잡는 것. 이 또한 트라우마의 범주에 포함되는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트라우마를 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트라우마는 이론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만이 트라우마가 아닐 수 있다. 그 경계는 꽤나 모호하며, 언제든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트라우마의 범위는 여기까지야’라며 선을 그어버리는 것 자체가 시간이 지나면 부질없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분노가 트라우마의 잔여물이라면 나는 현재 트라우마의 끄트머리를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받았던 차별의 역사가 어렴풋이 기억날 때 즈음 느껴지는 분노의 감정을 보아하니 말이다. 나는 트라우마라는 끄트머리에서 오는 막연한 분노를 언제까지 붙잡고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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