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란 것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하면서도 대부분의 노동이 하찮게 여겨지는 것을 보면, 사회적으로 노동이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씩 따져본다면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노동으로 치부되는 노동은 의외로 드물다. 하지만 노동에는 급이 나누어져 있으며, 그에 대한 결과는 크게 금전적 대가로 나뉜다. 노동의 숙련도에 따라 금전적 대가가 달라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지만, 비숙련 노동에 대한 사회적 처우는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AI 시대가 좀 더 빠르게 도래하게 되면서 비숙련 노동자들이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원리에 따라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한 방향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사회는 사회구성원들을 보호할 이유가 있다. 사회는 과연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에게 맡겨두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손'은 결국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렇게, 결국 사라졌다.
차별과 야만성의 시대일수록 다른 삶의 기획가 새로운 사회의 고안을 역설하는 목소리는 넘친다. 하지만 상품과 마케팅 사회에서 개인의 삶의 모습과 욕망은 점점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교환될 때의 능력과 값어치가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개별적인 시간이 지닌 가치를 대신한다.
"이 풍요가 너절한 세상에
각자 다르게 사는 것이 패션인 시절에
어쩌면 생각이 이처럼 같은지"
(백무산'교환가치','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님에' 창비 2020)
사람들은 대체로 유사한 성공 모델을 지닌 채, 다만 평균적인 삶에 안착하기 위해 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창조성이 중요한 가치로 추구되기는 하지만 정작 드러나는 것은 '새로운 창조성'이 아니라 '새로운 상투성'이다.
- 김영희 '생명의 관측소와 새로운 노동 시'
새로 등장하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벽하게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새로 나왔다는 모든 것은 기존의 것에 몇 가지 덧붙여져 세상에 내보여지며, 미디어는 그것을 새로운 것처럼 포장한다. 기존의 것과 다름을 강조하여 마치 새로운 상품인 양 마케팅을 벌이면서 기존 것을 계속 사용한다면 앞으로 세상의 트렌드에 뒤처질 것이라는 무언의 위협을 가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것에서 변한 것이 없다는 것.
이것을 노동에 적용시켜보자.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다고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은 시간이 지나도 대부분 고정되어 있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직업들의 리스트를 국가별로 모아 보면, 대부분이 유사한 리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시간이 그렇게나 많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었다는데 어떻게 이러한 리스트에 올라가있는 직업군은 여전히 리스트의 한 줄을 차지할 수 있는 걸까.
세상은 변해가고 있지만 적어도 노동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저임금으로 받을 수 있는 교육은 한정되어 있으며, 교육비의 지불에 한계를 느끼는 그들은 자신의 자식에게 노동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하여 세상은 지독히도 묵인하고 외면한다. 그들은 충분히 대체재의 등장에 밀려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들의 노동이 저임금으로 머물러주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묵인된 노동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훗날 이들이 한순간에 AI에 밀려나게 된다면, 그들이 버틸 수 있는 마지막 자리는 어디일까.
백무산의 시에서 몸의 의미는 주체의 언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노동의 근육 속에는 말이 있다'. 노동자의 몸은 곧 노동자의 말이다. 노동하고 창조하는 몸, 병든 몸과 죽음의 몸은 생산과 저항의 기호가 되어,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상품화하는 세계에 메시지를 송신한다. 그 말은 고립된 독백이 아니라 타자와의 대화이다. '억눌린 살의 말'은 '피 흘림으로 대답한다'. '어설픈 이성'은 그 말을 막으려 하고 '지배하려' 한다.
- 김영희 '생명의 관측소와 새로운 노동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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