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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파수꾼' 후기

by 이 장르 2020.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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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상관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적응해야만 했기에 절박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 그 누구도 가르쳐준 적 없어 서로를 대하는 것이 서툴렀기에, 그만큼 나와 함께해주는 이들을 당연하게 여겼었다. 짧은 인생을 살아놓고선 대단한 인생의 역경과 고난을 겪어낸 마냥, 그렇게 살았더랬다. 우리가 영원할 줄 알았다. 영원한 건 없다는 연장자들의 말에 코웃음치며 우리는 영원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생각해보면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우리는 영원할 거라 장담할 수 있었을까.

가정으로부터 조그마한 사회로, 관계에 서툰 나를 드러내며 날것의 나 자신을 겪어낸다. 우리 모두 여전히 관계에 서툴기에, 서로를 위하는 감정과 서로를 대하는 행동이 꽤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마치 영원할 것처럼, 끝이 없을 것처럼 서로에게 시간을 투자하지만 또 다른 사회에, 각자 또 다른 환경을 마주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의 절벽을 마주할 수밖에 없더라는 것을,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나 알량한 것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그렇다, 너와 나는 어쩌면 변할 수밖에 없는, 변해야만 하는 환경을 눈앞에 두고도 우리는 당연히 환경에 굴복하지 않을 것처럼 큰소리를 쳐댔다. 그저 젊은 패기었다고 해두자.

관계에 서툰 태도는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상처를 건네기 쉽다. 내가 가장 중요해진 지금보다 네가 더 중요했던 그 시절. 분명 나보다 너를 더 위했던 것 같은데 왜 지금보다 더 많은 상처를 건넸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서로가 소중했기에 너무나 사소한 것만으로도 상처받았던 걸까, 아니면 네가 건네는 상처에 무뎌진 걸까.

나이는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지금 이 순간 서로를 마주 보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의 모습 또한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모순적이게도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우리가 언제까지 서로의 시간에 머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함께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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