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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귀찮음의 대가(代價)

by 이 장르 2020.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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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한 살씩 먹어감에 따라 어느 집단에서 연장자가 되는 횟수가 어쩔 수 없이 늘어나게 된다. 아직 어른이 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시간은 나를 어른이라는 위치로 등 떠밀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동등한 위치에서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많은 곳에서, 나이만으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더 얻어지는 느낌이 든다.

 

누구나 사람들에게 자애로운 어른으로 비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한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을 느껴야만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이와 체력은 반비례한다. 체력이 줄어들수록 귀찮게 느껴지는 일들이 하나둘 늘어나게 된다. 새로운 일은 물론이고 기존에 해냈던 일들조차 예외는 아닌 것이다.

 

귀찮음은 나이 듦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노력 혹은 스스로에 대한 피드백을 수용해야 하는 순간들과 마주할 일이 생긴다.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좋게 말해 피드백이지, 사실은 나의 것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일만한 것이니 말이다. 더욱이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받는 피드백은, 한국사회에서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왜 이런 생각이 들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한국은 나이도 서열의 일부로 작용되기 때문에,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나의 나이만으로 그들의 입을 닫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아무리 ’ 꼰대‘를 증오하며, ’ 꼰대‘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고한들 노력 없이 얻어지는 나이만으로 대부분의 비판을 피해 갈 수 있다는 것은 꽤 달콤한 유혹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나의 것을 수정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을 한다는 것이 꽤나 귀찮은 작업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귀찮음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혐오하는 ’ 꼰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 꼰대‘라 칭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나이와 지위를 타인의 입을 닫는 데에 사용한다. 자신의 의견이 상대방과 충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의견이 타인의 의견과 동등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반박을 수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 꼰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애초에 차단하려 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자신의 노력하지 않는 행위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 장담을 할 수 있다면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귀찮음으로 인해 누군가가 불편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 꼰대’라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기성세대로 불리는 사람들은, 젊은 시절 자신의 윗세대가 나이와 권력을 동시에 얻어가는 것을 보고 살아왔다. 그들은 그것을 당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나이와 권력은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며, 사람들의 존경 또한 별개로 얻어내야 하는 요소로 분리되었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에서 기성세대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과거의 시선을 놓지 못해 현재의 시간 안에서 과거를 살아가고 있거나, 현재의 변화를 받아들여 별개로 얻어내야 하는 요소들을 쟁취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거나.

 

인간은 꽤 어리석기에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모든 분야에서 자신보다 경험이 적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일직선 달리기가 아니다.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줄 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적더라도 나와 다른 분야에서 나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면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을 가능헝이 높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에서 경험은 마치 개미굴을 파내려 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들여 경험을 하고 있어도 그 방향이 다르다면, 그것은 서로의 분야에 무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권력, 지위 혹은 사회적으로 괜찮은 직업을 얻으면 존경이 뒤따라왔던 시대는 지났다. 평생직장이 당연시되었던 과거 와는 달리,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회사가 자신을 이끌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위와 같은 조건들에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존경이 덧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기성세대 롤모델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 비해 불확실성이 높아졌기에 개인적으로는 이전의 그 어떤 세대보다 롤모델을 가장 원하는 세대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가치관의 차이라면, 굳이 변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물론 가치관만의 문제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시간 위에 과거의 시간을 덮어 살아가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자신보다 오래 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세대 개개인을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자신의 가치관이 정립되어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그것이 타인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잣대로 사용이 된다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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