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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2019 유럽 🇫🇷🇨🇭🇦🇹🇨🇿🇭🇺

유럽 0-1. 프롤로그

by 이 장르 202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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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과 병행했던 만 2년의 '공시생' 생활을 접고 나서, 마치 내 인생이 실패한 듯한 마냥 불안하고 초조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으나, '불합격'이라는 타이틀에 아무래도 한껏 움츠려 들어 살았던 시절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공무원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했지만, 대략 730일의 시간 동안 내 인생의 목표는 '공무원'이었으며 내 생활패턴 또한 '공시'에 맞춰져 있었으니 그 말이 위로가 될 턱이 없었다. 시험이 끝나자, 내 인생 또한 방향성을 잃은 듯했고 관성의 법칙처럼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아 자격증이며 무슨 시험이며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막상 취업시장에 나오니,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삶이 볼품없는 이력서 몇 줄에 없던 일이 되는 듯했다. 푹 꺾인 나의 자존감을 알아챘는지 엄마가 조심스레 다가와 일단 어디든 취업을 해보길 권했다. 내가 상상했던, 서울에 있는 멋들어진 건물에 있는 회사에 취직을 하여 매일 커피 한잔을 들고 출근을 하는 나의 모습과는 다르게, 근처에 있는 소규모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이 취업난에 무슨 배짱이었는지 대표님께, 26년을 살면서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다며 2~3주 정도의 기간 후에 출근하고 싶다는 말을 던졌다. 다행히도 대표님은 2~3주의 기간동안 무얼하고싶냐며 물어보셨고 그저 길게 쉬고 싶은 마음에 '유럽여행'이라는 거창한 쉼의 이유를 공표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행 따위는 갈 생각 없었고, 그저 집에서 강아지랑 하루 종일 뒹굴거릴 생각뿐이었다. 나름의 거창한 이유를 들어보시더니, 감사하게도 그렇게 하라며, 젊을 때 좋은 경험 많이 해봐야 한다며 잘다녀오라고 해주셨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자신감에 그렇게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당시는 꽤나 패기넘쳤었고, 어떻게 집에서 쉬어야 알차게 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마냥 들떠있었다. 

그렇게 전 직장 퇴사일을 앞두고, 문득 갑작스레 얻어진 2~3주의 기간 동안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이김에 유럽이란곳에 다녀와보는것도 나쁘지않을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유럽이란 곳을 검색해보기시작했다.

가까운 아시아도 안 가본 내가 해외를 혼자 가기에는 너무나 두려웠고, 그렇게 찾아보다 세미패키지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유럽을 한번도 가보지않은 나에겐, 숙소나 국가간 이동방법 등을 찾아내는 것이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이런저런 이동비용을 계산해보니 여러 개 나라를 비행기로 이동할 때 드는 경비가 세미패키지로 가는 경비보다 적게 들 것 같아 홍보용 블로그에 적힌 모 여행사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네 여행사입니다.'

두근두근

'아, 세미패키지 문의드리려고 전화드렸어요.'

'언제 출발하실 예정이세요?'

'정확한 계획은 없고요. 그냥 3월 초에 출발하고 싶어요. 혹시 가능할까요?'

'네 3월 출발 예정 유럽 세미패키지가 있네요. 출국일은 3/6이에요.'

3/6일이라니. 2주도 안 남은 일정이네.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뚝.

세미패키지 금액은 대략 250만 원. 경비와 비행기표 금액까지 포함하면 약 500만 원 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공무원 준비하느라 인터넷 강의와 문제집에 대한 지출이 대부분이었기에 모아둔 돈은 조금 있었다. 그래 뭐, 돈이야 다시 벌지 뭐.

그렇게 그 다음날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세미패키지를 신청했고, 그 주에 비용 입금과 비행기표 결제까지 모두 끝내니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유럽여행이란 거대한 목표가 이렇게나 빠르게 이루어지다니. 사실 샤를드골 공항에 내려서도 실감나지않았더랬다.

 

2/28 퇴사 그리고 3/3 오후, 세미패키지에서 함께 생활하게 될 사람들과 강남역 스터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 들러 씻고 화장을 하고 허겁지겁 강남역 11번 출구에 도착했다. 일단 어느곳으로 가야할지몰라 스터디 카페를 검색했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지이잉. 단체톡이다. 스터디카페 이름과 대략적인 장소가 올라왔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일행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두긴 했지만 초면인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는 일은 여전히 익숙하지않다. 

 

보인다, 스터디 카페. 어색해, 벌써. 직원분에게 1번방의 위치를 물었고, 직원분은 손으로 공손히 옆쪽을 가리켰다. 물어보기도 민망할정도로 가까웠구나. 감사하다는 인사와함께 가리켜주신 곳으로 들어가니 앞으로 일행이 될 세명이 긴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노트북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맨 안쪽의 도도한 인상의 여자애와 맞은편엔 연장자 느낌의 오빠, 그리고 나와 일정이 같다던 흔하지 않은 이름의 언니가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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