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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2019 유럽 🇫🇷🇨🇭🇦🇹🇨🇿🇭🇺

유럽 0-2. 프롤로그

by 이 장르 2021.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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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맨 안쪽의 도도한 인상의 조그마한 여자애와 맞은편엔 선생님일것같은 오빠, 그리고 나와 일정이 같다던 흔하지 않은 이름의 언니가 앉아있었다. 다들 오늘 처음 마주한터라 역시나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고, 이 어색함을 깬 것은 앞에 앉아있던 언니였다. 우리 이렇게 만났는데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자며 제안을 했다. 흔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언니의 흔하지 않은 친화력에 살짝 당황했지만, 분명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지않았다면 어색한 공기속에서 산소를 갉아먹는듯한 기분만 더 길어질 뿐이었을것이다. 길쭉한 테이블에 앉아 한 명씩 어색하게 이름과 나이, 그리고 사는 곳을 읊었다. 호구조사하듯 내 신상을 읆조려보는것이 얼마만인가.

어색했던 자기소개가 끝나고 몇 분 후, 한 두 명씩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이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게만 느껴졌던 8인용 테이블이 금새 가득 찼다.  비어있던 내 오른쪽 편에는 까만 머리에 까만 코트를 입고 있던 동갑이라는 도도한 인상의 여자애와 나이를 밝히고 싶지 않다던 머리 긴 언니, 그리고 키 크고 안경 쓴 어떤 남자애가 앉았다. 유럽에서 함께하기로한 일행은 총 16명이었으나 모임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영국여행중인 언니는 참석하지못했다. 혼자 여행중이라던 언니는 영국 사진을 간간히 단톡방에 보내며 우리의 설렘을 부추겼다.

여행을 위해 찾아봤다던 파리의 일정을 하나둘씩 공유하기 시작했다. 준비해온 게 없던 나는, 퇴사후 무기력하게 보냈던 며칠간 정말 아무것도 하지않았다는것을 새삼 실감했다.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에 머뭇머뭇 대고 있을 때 즈음, 내 옆에 앉은 언니가, 본인도 준비해온게 없다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 다행이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언니도 이자리가 꽤나 어색했는지 토끼 눈을 한 채로 모임 내내 사람들의 일정을 듣고있었다.

어색했다. 원래 여행 계획 짜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조금이라도 검색 해보고올걸 그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살넘어 처음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이라, 여행계획이라는게 사실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그 흔하던 제주도도 가보지않았던 나의 20대는 뭐가그리 바쁘기만했는지. 돌이켜보면 열심히 살아온것같기도하다가,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살아보겠노라고 노력을 쏟아부으며 발악했는데도불구하고 이렇다할 결과가 없었으니 스스로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몇몇 사람들이 준비해 온 정보로 모임이 얼추 끝나고 근처 닭갈비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했다. 사실 처음부터 닭갈비를 먹으려던건 아니었다. 인원이 적은편이 아니었기에 우리가 모두 들어갈수있는 음식점을 찾다보니 큰길 앞에있던 닭갈비집으로 향한것 뿐이다. 두세묶음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어색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도해보이던 동갑 여자애들은 웃음이 많았고, 준비해온게 없어 모임내내 나와함께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언니는 알고보니 굉장한 동안이었다. 

 

집에 오는 길. 핸드폰 화면을 보니, 시간을 나타내던 네개의 숫자 아래로 카톡알람이 우수수수 쏟아졌다.

 

'다들 파리에서 봐요'

'네 조심히 가고 파리에서 봐요'

아 뭔가 멋지다, 파리에서 보자라니. 멋진 사람이 된것만같은 순간이었다.

 

'파리에서 봐요'

나 진짜, 유럽 가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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