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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2019 유럽 🇫🇷🇨🇭🇦🇹🇨🇿🇭🇺

유럽 0-3. 프롤로그

by 이 장르 2021.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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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다. 어제까지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무언가 특이할 것도 없던 모임이었는데, 그냥 느낌이 그랬다. 이 시간까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낯설어 일단 몸을 일으켰다. 물을 한잔 마시고 옆을 보니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강아지가 눈에 띄었다. 아, 밥부터 줘야지.

 

 

"꾸미 밥먹자."

 

 

밥그릇 옆에 있던 사료 봉지를 뜯으며 강아지에게 다가갔다. 점점 거세지는 꼬리의 회전을 보고 있던 나는 무의식 중에 미소를 머금었다. 사료 한알이라도 사라질세라 밥그릇에 최대한 몸을 가까이해서 늦은 식사를 하고 있는 강아지 뒤편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무심결에 열었던 검색창을 보고서야 이틀 후에 유럽여행 간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 갔다. 무작정 '유럽여행'이라는 단어를 입력하고서 검색창 옆의 돋보기 버튼을 눌렀다. 화창한 사진을 곁들인 글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뭐부터, 아니 어떻게 검색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여행을 좀 다녀봤어야 알 텐데.

'파리 날씨'

 

​짐을 싸야 한다. 어떤 옷을 챙겨야 할지가 가장 중요한 건데, 3월이니까 한국처럼 봄 날씨 일까. 따뜻하려나. 얇은 여름옷을 대부분으로 하고, 혹시나 모르니 패딩 하나, 후리스 하나 챙겼다. 또 뭘 챙겨야 하지. 운동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가까운 다이소로 갔다. 여행 용품이 어디 있더라.

 

 

"여행 용품 어디에 있어요?"

 

 

직원 분에게 물으니 대답 대신 시크하게 매장 안쪽을 가리키셨다.

 

 

"아 네. 감사합니다."

 

두세 개의 계단을 거쳐 가장 구석진 곳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자주 찾지 않을 법한 등산용품, 캠핑용품들이 벽 쪽 한 면을 크게 장식하고 있었다. 다양한 편은 아니었지만 여행 용품도 꽤 있었다. 빨래 가방 색이 다른 것으로 두 개, 여분의 신발을 넣어갈 주머니 하나, 걸 수 있도록 안에 작은 갈고리가 달려있던 세면도구 가방 하나, 그리고 작은 샴푸와 린스 하나씩. 그리고 소매치기를 대비하기 위한 스프링 고리 몇 개까지.이쯤 되면 여행 가는 게 실감이 나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출국하는 날이 와야 느껴지려나. 비 오는 거리를 한 손은 우산, 한 손은 하얀 봉투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띡띡띡띡, 띠디딕. 집 문을 열자마자 달려오는 우리 집 꾸미. 꾸미 미안, 언니 오늘내일 짐 챙기느라 정신없을 거야.

 

주섬주섬. 담아도 담아도 무언가 더 넣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아무래도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여행을 해본 적이 없기에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을 물건을 채우는 행위로 덮어보고 싶은 듯했다. 그러다 잠시, 이것저것 넣던 손을 멈췄다.  내가 이 옷들을, 이 물건들을 그곳에서 다 쓰고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끝에 캐리어에 담겼던 옷가지의 절반을 거둬냈다.

 

맞다, 나도 여행 간다고 인스타에 올리는 걸 하고 싶었더랬다. 누군가가 항공권 사진 찍어 올릴 때마다 그게 꽤나 부러웠다. 어떨 땐 열등감인지, 나의 젊음과 그들의 젊음을 비교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세상에서는 젊음을 즐길 수 있는 시기의 상징처럼 묘사해두지만 나의 젊음은 그렇지못했기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떨 때는 그게 참 서럽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간다. 대한항공 어플을 켜고 내 항공권 내역을 캡처해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다. 고작 스토리 하나 올렸을 뿐인데, 무언가 뿌듯함이 밀려들어왔다. 나도 진짜 여행 간다고.

 

비행기는 3월 6일 오후 2시. 비행시간은 12시간 30분. 저 어마어마한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밤을 새우고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새벽 세 시 반, 한계다 한계.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잠든 3월 6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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