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게 당신과 앞으로 함께할 수 있을 거란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았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아이의 거짓말은 얼마나 허술했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그 구멍을 파고들었던 너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아니, 사실은 부끄러운 감정을 화로 숨기고 싶었는지도.
앨리스를 찾아가 부탁을 했다. 나의 연극에 그가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주길 바라는 몸부림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우리의 연극에 그저 그가 함께 발맞춰주는 것인지 그땐 알지 못했다. 기억을 찾는 것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엘리스는 그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더랬다. 결국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앨리스에 대한 선배의 마음을 견고히 만들어주는 데에 보탬이 된듯했다. 앨리스와 마크는 자신도 모르게 둘만의 추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삶이 마음대로 된 적이 있던가. 아무리 꽉 쥐어보려 애써도 결국 모래 알갱이처럼 빠져나가는 것도 있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 뜻밖의 계기로 나를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이 좋은 것이며, 또 어떤 것이 나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저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어쩌면 가장 우리를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나는 그렇게 선배를 흘려보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란 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흘려보낸 그 시간 속에 함께해 준 선배의 마음이 비로소 하나가 머물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뭐가 인기 있는지 몰라서.. 만년필로 샀다. 우리 어릴 땐 만년필이 최고였어. 받아도 쓸 일은 거의 없었지. 서랍 구석에서 가끔 발견하고는,'이게 있었지' 생각하다가도 결국 안 쓰게 돼. 그래도 발견할 때마다 추억들이 떠오르지. 그런 의미에선 꽤 괜찮아. 부적이라 생각하렴."
"써도 돼요?"
"물론 써도 되지. 근데 쓰면 잉크가 없어지잖니. 잉크 사러 가기 귀찮아질거야. 그래서 결국 안 쓰게 될 걸."
"못 쓴단 거네요."
"그래도 선물로 받은 건 쉽게 버리지도 못 한단다. 그래서 오래도록 남게 되지. 그게 만년필의 장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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