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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월간 글노트

2021. 02. 월간 글노트

by 이 장르 2021.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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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여전히 차갑다. 이 추위가 오랜 기간 이어질 것 같아 여전히 날 둘러싸고 있는 까만 롱패딩에서 오랜 기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독한 더위를 피해 실내로 숨어들기 바빴던 듯한데, 지금은 그 더위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망각이라는 것이 어쩌면 나의 어리석음을 한 스푼씩 얹어주는듯하여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다. 언젠가 이 추위 또한 또 다른 기억에 묻힐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당장 눈앞에 펼쳐져 있는, 끝나지 않을듯한 추위에 한없이 웅크려들고 있었다.

잊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이것조차 언젠간 잊어버릴 것이라는 것이 조금은 슬프게 느껴지는 밤이다. 나는 여전히 인간이고, 앞으로도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의 연속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이라는 굴레에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벗어나지 못할 나의 처지가 왠지 모르게 슬프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말하는 미래는 형태가 없기에,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없다. 때론 사소한 것조차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지다가도, 예상할 수 있는 순간이 이어진다면 또 다른 무기력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불확실성에 감사해 보기로 했다.

흘려보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겉으로는 맑고 투명해 보기엔 좋지만 실상 흐르지 못해 죽어버린 호수처럼, 살아있다는 것은 그리고 나를 흘려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려보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흘려보내는 과정에서 자잘한 걱정과 고민들을 쓸어내어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그러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깊이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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