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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좋은 책 :: 'AI 시대, 본능의 미래' 4. 죽음의 미래

by 이 장르 2021.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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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언제 닥쳐올지, 그 시기를 알 수 없기에 인간은 불안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듯, 인간이 스스로 죽음의 시기를 선택하는 행위는 분명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혹여나 죽음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선택한 순간부터 죽기 직전까지의 엄청난 고통은 그 어떤 것도 감내해 주지 않는다.

인류가 생겨나면서부터 살아왔던 모든 인간이 죽음을 겪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죽음 이후에 대한 기록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경험을 전해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어버린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기에 인간에게 죽음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미지의 영역에 남아있게 될 것이다. 인간은 죽음의 시기를 결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인간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원할 때 죽을 수 있다는 말은 꽤나 매력적이다. 벌써부터 노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언젠간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불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인간의 삶에서 불확실성을 줄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에 쉽게 선택하면 안 될 문제조차 자신의 죽음으로 해결해버리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의 선택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문제는 그저 남은 이들의 문제일 뿐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불안정적인 요소를 없애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기를 원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누군가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가능한 세상이 온다면, 세상의 불안정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남은 이들의 존엄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데이비드는 죽음의 기계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데이비드는 노화와 질병,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세상에서 살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죽을 운명임을 알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세상, 질병과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대할 준비가 된 세상에서.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치매와 근위축성측색경화증 등 우리를 대단히 두렵게 만드는 여러 질환에 관한 연구에 적절하게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도 자신을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치료와 사회 복지에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 자신의 죽음을 통제하고 싶다는 사람도 알고 보면 죽음 자체가 아니라 존엄과 안도감을 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법률에 정식으로 명문화된 죽을 권리가 필요하다. 살기를 원하는 취약 계층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도움을 받아 죽는 일을 합법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건 죽음의 기계를 설계하는 것보다 지적인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를 부유하거나 유명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할 수 있기 전까지는 간절한 사람들이 착취에 그대로 노출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생물학적 죽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삶에 대한 스스로의 집착이 아니었을까. 다시 말해 그들이 살아오면서 버리지 못한 욕심 따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을 스스로로부터 끊어내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살아가는 내내 그것을 끊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죽음은 우리와 우리에게 족쇄처럼 매달려있는 욕심을 분리할 수이는 유일한 수단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죽음을 선택하려는 것이 아닐까.

"완벽한 죽음 같은 게 있을까요? 그런 게 있을 수 있을까요?"

"심미적으로 보자면 사르코(원격자살기계)죠. 떠나기 전에 붕 뜬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우아한 장치가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좋아하는 장소로 가지고 갈 수도 있으니까 아름다운 곳을 배경으로 할 수도 있고요. 심미적으로는, 그게 완벽한 죽음이지요. 하지만 정말로, 진정으로 완벽한 죽음은 모든 사람과의 잘못을 바로잡는거예요. 그리고 인생에서, 죽을 운명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화해하는 거예요. 개인 소지품, 원한, 중독, 분노에 대한 집착을 끊는 거죠. 제게는 그게 완벽한 죽음이에요. 이해와 받아들이는 과정을 하나씩 거치는 것, 사르코는 아름다워요. 하지만 그런 게 정리되지 않으면, 기계 안에서 계속해서 고통받는 영혼이 될 수 있어요."

"완벽한 죽음이란 죽는 방법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는 건가요?"

"맞아요." 마이아는 생각에 잠긴 듯이 되뇌었다.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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