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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후기

by 이 장르 2020.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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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엄마에겐 악마, 자신에겐 가혹했던 케빈의 이야기. 사춘기의 반항심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일반적이지 않았던 케빈의 행동.

 

누구의 잘못이고,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가. 그 순서를 알 수 없는 전쟁이었다.

 

엄마가 처음이었고, 인생에 ‘엄마‘라는 요소는 생각해본 적 없으며, 엄마가 되길 바라지 않았던 에바.

 

모성애는 결코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결혼을 했다고 해서, 아이가 생긴다고 해서 뜬금없는 모성애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케빈을 낳은 에바처럼.

 

너무나 닮았기에 안타깝게도 너무나 잘 알았던 서로였을지도 모른다. 케빈은 엄마가 자신의 탄생을 원망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어릴 때부터 이어진 엄마에 대한 분노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동생 실리아를 향했다. 아마 자신과는 다르게 따뜻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실리아의 삶을 바라보며, 억울함이 더해졌으리라.

 

왜 그들을 죽였는가에 집중하기보다, 왜 그녀를 죽이지 않았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엄마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쥐어주기 위해 활을 들었다.

 

관성의 법칙, 물체가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

케빈이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 그 이유는 상관없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원인과 결과를 번갈아 보여준다는 것은 메멘토와 유사한 점. 하지만 다른 점을 말해보자면, 화면 이동에 있어 규칙성이 덜하다는 것. 그렇기에 쉽게 이야기의 흐름을 잡기가 어려웠다.

 

영화에서 나오는 에바는, 사회적으로 통용되어있는 판타지적 ‘엄마’라는 프레임을 깨버린,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꽤 있을듯한 인간 ‘엄마’의 모습을 담아냈다고 느껴졌다.

 

케빈의 증오, 분노에 대한 원인이 다양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원인이 엄마로 수렴하게끔 하는 것 같아 그 부분이 아쉽게 다가왔다.

 

하얀 집 바깥에 칠해져 있던 빨간색 페인트를 지우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케빈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후회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분노였을까.

 

마지막 장면, 그 여운이 나에겐 익숙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던 다른 상업영화들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나를 생각하게끔 만드는 장치들이 있음에도 최대한 피해 가보려고 하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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