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하게 움직이는 룸메들의 소리에 잠이 깼다. 다들 어찌나 부지런한지, 여행 내내 아침 여섯 시만 되면 알람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전형적인 한국인의 여행 패턴이었다. 늦잠까지 자고 나서 느지막이 도미토리를 나와 주섬주섬 준비하는 나의 여행 패턴과는 많이 달랐다. 그러고 보면 여행 스타일이 이렇게나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행기간 동안 불쾌함 없이 서로 잘 지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신기할 따름이다.
침대에서 내려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창문 쪽으로 스멀스멀 향했다. 어제 그렇게나 맑은 아침을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야속하게도 오늘의 하늘도 여전히 구름 속에 갇혀있었다. 두세 시간 후엔 패러글라이딩 예약이 되어있는데, 날씨가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기대했던 패러글라이딩 스케줄은 취소될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봐도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깔끔하게 준비한 룸메들을 따라 1층 로비에 내려갔다. 역시나 일행들은 아무도 내려와 있지 않았다. 우리는 조식 뷔페에서 먹을만한 것을 몇 가지 골라 접시에 얹고 푸른 강이 보이는 쪽에 자리를 잡았다. 맛있긴 했지만 역시나 파리에서 먹었던 빵을 잊을 순 없었다.
스위스는 풍경 맛집이었다. 룸메들과 조식을 먹으며 패러글라이딩 시간까지 기다려볼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고 함께 기차표를 사서 융프라우로 향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9시에 패러글라이딩 예약이 잡혀있던 일행들과 꽤 오랫동안 고민을 하다가, 나는 환불이 되지 않더라도 기차를 타고 가겠노라고 선포했다. 아무래도 꽤 큰 예약금이 걸려있어서 그런지 다들 선뜻 결정을 내리지못하고있었다.
조식을 다 먹고 룸메들과 간단히 짐을 챙겨 나왔다.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하지 않았거나 8시 예약이 취소된 사람들과 함께 융프라우 요흐로 향하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로 향했다. 하늘은 흐렸고, 비는 여전히 한두 방울씩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기 애매했던 우리는,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역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역 카운터에 서서 짧은 영어를 남발하며 초록색 여권을 꺼내 들었다. 직원분이 내 여권을 보더니, 만 25세 이하는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고, 생일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나의 25세를 여기서 마지막까지 누려보기로 했다. 표를 사고 나와 기차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에서 볼법한 기차가 우리 앞에서 멈춰 섰다. 우리는 빠르게 기차에 올라탔고,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스위스의 기차가 모두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던 기차와는 조금 다른 내부 형태였다. 의자는 마주 보고 있었고, 그 사이에 조그마한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의자와 의자 사이의 간격이 넓은 편이라 캐리어 두 개가 들어와도 남을 정도였다. 또 한국과 달리 창문은 위에서 아래로 열리는 형태였다. 여행에서 이런 소소한 다름을 경험하며,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누구에겐 이런 사소함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 또한 당연하지 않은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표를 살 때 기념 여권이라며 건네받았던 빨간 종이를 들고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이 기차는 자리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함께 출발했던 일행이 많았던 우리는 한 칸에서 옹기종기 함께 모여있을 수 있었다.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절반은 녹아 흩뿌려지고 있던 눈이 비처럼 흩날리고 있어 일단 창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창밖은 하얀 세상이었다. 창밖에는 눈이 한가득 쌓여 형태만 다를 뿐,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깥 구경을 하며 정신이 팔려있을 무렵, 융프라우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 환승을 해야 한다는 일행들을 뒤따라 기차에서 내렸다. 오르막길 양옆으로 늘어져있던 오두막집들은 우리가 스위스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 뒤를 크게 둘러싸고 있는 설산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차가운 공기를 피하기 위해 옷을 한번 더 여몄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우리는 어느 평평한 곳에 도착했고, 철도 너머로 있는 승객 대기실에 들어가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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