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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28년 째, 내가 나에게

by 이 장르 2020.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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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하여 글을 써야 한다니. 때때로 나를 들여다보려 하다 보면 문득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28년간 나는 나로 살아왔지만, 아직도 멀었나 보다.

 

사람은 서로 처음 만난 그 시간에 각자의 시계가 멈춰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알게 된 친구들은 내 기억 속 그때 그 시간에 멈춰있다. 나에게 첫인상이란, 그저 그 사람 찰나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처음 함께하게 되었던 그때 그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나의 첫 모습은 어느 시절의 모습일까.

 

요즘의 나는, 마냥 어린애가 된 기분이다. 20대 초반에는 하고 싶은 것보단 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았기에 어느 순간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잊고 살아온 지난날이 참 서러웠나 보다. 남들은 현실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 시기에, 나는 꿈을 찾겠다고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때는 그저 돈을 벌고 싶었다. 돈을 벌어 독립하고 싶은 것도,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땐 그랬다. 아마 19살 수능을 마치고 모든 것을 내가 벌어해야 했던 환경 탓일 수도 있겠다.

 

안정적이고 싶었다. 남들이 합격하면 좋다던 공무원 시험을, 주변에서 다들 그 길을 가길래 딱히 꿈이 없던 나도 그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공부는 나와 인연이 아니었는지 아무리 나의 시간을 들이밀어도 호되게 내쳐졌고,

 

공부하며 일도 해야 했던 나름대로 치열했던 지난 2년을 마무리로 27살이 되었다.

 

가진 것도 없고 경력도 거의 없던 27살, 막막했다. 인생은 열심히 산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주변에서는 그 시험만이 길이 아니라고 위로했지만, 2년간 그 시험만 보고 쉼 없이 달려온 목표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나에겐 와 닿지 않는 위로일 뿐이었다.

 

공부를 위해 다녔던, 경력도 되지 않는 일을 2월로 마무리짓고 집 근처에 있는 작은 곳에 취업을 했다.

 

2019년 2월 말 퇴사와 동시에 3월 말 입사. 쉼 없이 달려왔던 나의 20대,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면 생각도 않고 ‘여행’이라고 답했겠지만, 작년 이맘때 즈음까진 여행을 싫어했다. 돈 뺏 었고 시간 뺏는 성가신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인지 수능이 끝나고부터 이때까지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었다. 가까운 제주도조차도.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다. 스스로 말도 안 된다고 되새겼던 것과는 다르게 일주일 만에 비행기표며 모든 예약과 결제를 완료했다. 인터넷을 뒤적이며 환전도 하고 여행용품도 사며 짐을 꾸렸다.

 

출국 일주일 전에 결정을 한 것이기에 가족과 자주 연락했던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내가 여행 간다는 것조차 몰랐다. 비밀스럽게 가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그냥 정신이 없었던 거다. 친한 몇몇 친구들은 소식을 듣고 유럽으로 가는 여행길이 설레지 않냐고 하던데, 여행을 가봤어야 어떤 기분인 줄 알고 설레 기라도 하지.

 

다른 사람들은 짐을 챙기는 것부터가 여행의 시작이라며 설레는 마음을 품고 지낸다던데, 나는 아무리 여행을 다녀도 캐리어 챙기는 것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출장이든 여행이든 대부분은 공항버스를 타기 2시간 전부터 빈 캐리어를 열고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공항에 들어설 때 즈음되어야 조금은 여행 가는 기분이 느껴지는 걸 보니 나는 이런 것에 꽤 무딘 사람인가 보다.

 

그렇게 어영부영 등 떠밀리듯 떠난 여행. 12시간을 견뎌 도착했던 파리. 그 밤에 파리의 야경을 보겠다며 동행들과 꾸역꾸역 밖으로 나가 맞이했던 에펠탑. 그렇게 아름다웠던 스위스, 영화 세트장 같았던 오스트리아, 여유로웠던 체코를 함께하고 동행들과 흩어져 도착한 헝가리. 고생이란 고생은 전부 하고 도착한 부다페스트 숙소. 고생했다고 설렁탕 먹으며 소맥 말아주던 동행 언니와 함께 봤던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리곤 한다. 행복에 겨워 눈물 난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느꼈다.

 

발 뒤꿈치가 까져 여행 다니는 내내 신발과 양말 뒤편에 피가 묻었지만, 신발을 2번이나 바꾸고 다리를 절면서도 돌바닥을 열심히 돌아다닐 정도로 행복했다. 그렇구나,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딱 1년 전이다. 잠시 쉬면서 인스타그램을 켰더니 그때 함께했던 동행이 파리 사진을 올렸나 보다. 나만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우리 모두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기분이 달큼해졌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고난 후, 어느 날.

 

“엄마 나 딱 3년만 여행 다닐래.”

 

뜬금없이 엄마에게 여행을 다닐 거라며 선포를 했다. 연애, 공부와 마찬가지로 이번 여행을 계기로 여행도 그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여행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젠 동네 밖을 나와 그저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여행 다니면 얼마 나다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출장을 포함한다면 한 달에 한 번꼴로 출국을 했으니. 대단한 집념이다.

 

그러다 문득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여행에서 담아온 사진들이 아까워 블로그를 시작했고, 여행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품어본 꿈이 여행작가.

 

굳이 여행작가인가 하겠지만, 혼자 글을 끄적이는 것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 생각이 그쪽으로 흐른듯하다.

 

글을 혼자 써 내려가는 것을 좋아했지만, 다른 작가님들처럼 창작을 하자니 문득 겁이 났다. 아마 그건 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듯 나 또한 흘러가나 보다. 여느 때처럼 노래를 들으며 러닝머신을 뛰다가 반복되는 리듬에 질려 우연이 켠 넷플릭스에서 보게 된 어느 드라마가, 내가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종이 위에 얹어둔 글이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면 어떨까, 생각하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누군가는 날더러 인생의 방향을 너무나 가볍게 결정한다고 할 수도 있다. 고작 운동하면서 본 드라마 한 편에 20대의 시간을 걸기에는 위험이 크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사람들 말마따나 몇 년후엔 또 다른 무언가를 하겠다고, 방법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곤 했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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