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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방도 어수선한데 무슨 생각 정리를 해

by 이 장르 2021.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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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직전, 유난히 고단하게 느껴졌던 한주였다. 감성이란 것은 뜨거운 볕 아래를 걸어가면서 이미 메말라버릴 대로 메말라버렸다. 외근을 마치고 잠깐 들른 카페의 커피는 유난히 씁쓸했다. 떠나기 전부터 바닥나버린 감정에, 돌아오는 여름 여행을 즐길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생각 정리가 절실해 보였다. 사실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긴 할까 의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정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부정할 수는 없는듯했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음악을 틀고 책상에 앉았지만 이리저리 쌓여있던 잡동사니들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이내 눈을 질끈 감고 그곳을 벗어났다.

그렇게 떠난 곳이 제주도. 분명 이러한 상황이 오기 전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여행지였다. 이미 오를 대로 올라버린 제주도 물가와 숙소비용을 생각해 봐도, 가까운 외국을 다녀오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여행지에 대한 결정은 대부분 해외로 향했다. 이번 제주도가 스무 살 이후 첫 제주도 여행이 이번 여행이면 말 다 했지 뭐.

섬이라고 생각했기에 꽤나 만만하게 생각했던 제주도는 생각보다 넓었고, 전체를 다 돌아보고자 했던 나는 금세 마음을 사분의 일로 토막 내어 제주도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래, 제주도는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니까. 조금 천천히 둘러보지 뭐.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느껴지는 공항 내음, 그리고 비행기 창밖에 펼쳐진 하늘 풍경이 얼마 만이었나. 여행을 그렇게나 자주 다녔던 시기에도 따라 할 수 없는 하늘의 색감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더랬다.

사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새로운 것들을 접하기 위함인데, 낯섦이 스며들 수 없는 시기에 떠난 여행은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누군가와 함께인 여행도 좋겠지만 나 자신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 또한 즐거웠다. 기나긴 줄에 얹혀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엔 마음껏 기다려보기도 하고, 갑자기 가고 싶은 곳이 있을 때는 가려던 곳을 지나쳐 그곳을 향하기도 해보고.

여행을 끝마치고 다시 돌아온다 해도 그 짧은 시간에 흩뿌려져있는 시간들이 어떻게 쉽사리 정리될 것이냐만, 그래도 내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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