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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관하여

읽기 좋은 책 :: '역량의 창조' 후기 -1-

by 이 장르 2021.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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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난한 국가건 부유한 국가건 인간 개발 문제가 있고 적정한 삶의 질을 최소한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몸부림이 보인다는 점에서 모두 개발도상국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시민에게 인간 존엄성과 기회를 보장해 주겠다는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한 국가는 없다. 역량 접근법은 이런 현실을 꿰뚫어 보는 힘을 제공한다.

 

 

 

 

이전까지 국가의 역량이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개인의 역량이 국가의 역량을 결정하는 사회가 되었다. 소수가 대부분의 경제력을 소유한다는 것은 더 이상 국가에서 반길만한 요소가 아닌 것이다. 세대가 변하면서 공평과 평등이라는 가치를 바라보는 관점은 확연히 달라졌으며, 이는 세대 간의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체주의적 시각에서 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역량 접근법으로 방향이 바뀌었을까. 가장 먼저 인권에 대한 개념의 정립에 대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완벽하게 정립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꾸준하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이해관계에 의해서일지라도 말이다.

사회가 개개인의 생각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지지가 필요해서든, 국가와 국가 사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윤리적이란 이유를 표면적으로 내세우든 말이다. 확실한 것은 절대적인 권력이라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공생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의견이 흘러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화 시킬 수 있는 환경을 추구해나감으로써 공생할 수 있는 능력치를 지닌 인간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시 말해 개인이 개인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치를 사용하고 나눌 수 있는 개인의 증식으로 이어져 결국 사회적으로도 이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개인은 검토 과정에서 정의에 관한 가장 확고한 윤리적 판단을 전면에 부각시킨 뒤(롤스는 '노예제는 잘못이다'라는 예시를 활용한다) 다양한 이론적 견해와 대조한다. 이때의 목적은 판단과 이론적 원리의 안정적 조화를 찾아내는 데 있다. 고정불변의 것은 없다. 처음에는 설득력이 있어 보이던 판단도 장점이 많은 다른 이론의 판단과 모순되면 수정해야 한다.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보이던 이론이 가장 기본적인 판단마저 유지해내지 못한다면 거부해야 한다. 아직 고려하지 못한 새로운 이론이 남아 있어 최종적으로 반성적 평형에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정의에 관한 전반적인 인식이 불완전한 상태로나마 더욱 깊어질 수 있다고 희망할 수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인간이 내세우는 주장 또한 완전한 것은 없으며, 그렇기에 꾸준히 수정되어 왔다. 과거의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것만 내세우는 자세 또한 좋은 태도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왔던 것들도 지금 사회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사실로 보아 인간은 꾸준히 더 좋은 환경을 이륙해내기 위해 사유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지 못한 과거의 피해자들이 현재에도 어느 부분에서는 다른 형태로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원주의와 문화적 가치의 문제를 살필 때 어떤 문화도 단 일체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문화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고, 어떤 지역의 바로 '그' 전통으로 통하는 것은 자신을 정치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데 능한 지배 집단의 견해에 불과할 때가 많다. 따라서 한 문화의 바로 '그' 견해에 관한 적절한 경험적 설명을 듣고 싶다면, 전통적 설명이 도외시하기 쉬운 소수자, 여성, 농민 등의 견해를 찾아봐야 한다. 우리가 이 점을 이해한다면 누구도 전통적 가치에 규범적 권위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전통은 대화거리나 논쟁거리를 제공해 주므로 우리는 자연히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입장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역량 접근법은 인간 존엄성 개념을 지침으로 활용하면 전통 속에 담긴 다양한 입장을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록은 인간을 주체로 작성된 것이다. 인간은 주관적인 존재이며, 아무리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것처럼 보이는 기록들조차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많은 요소들 중 특정한 부분을 정하는 것부터 기록하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된 행위인 것이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신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선정하는 행위, 여러 가지 사실들 중에 가치의 중요도를 매기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주관이 개입된 것이다.

전통에 대한 기록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익히 접해왔던 전통에 대한 기록은, 누군가의 주관대로 수많은 다양성 중에 몇 가지를 선정하는 주관이 개입된 것이며, 이러한 기록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양성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행위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행위가 되어버린다.

한국과 지리학적으로 가까이 붙어있는 중국이라는 나라는, 전통이란 이름으로 다양성을 한 문화로 짓누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포용한다는 말과는 다르게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중국이라는 국가는, 주관적인 인간이 이성적이라는 오만한 착각 속에서 살아갈 때에 어떠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다.

 

 

욕구는 선에 관한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격의 이지적이고 해석적인 측면이라고 본다. 결국 완전정보 하의 욕구도 정치적 정당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욕구는 우리가 지지하는 견해가 안정적일 수 있는지 알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 어떤 견해가 안정적일 수 있다고 밝히는 것은 그 견해를 수용 가능한 정치적 견해로 정당화하는 과정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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