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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좋은 책 :: '역량의 창조' 후기 -2-

by 이 장르 2021.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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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경제학계는 빈곤 문제와 사회적 약자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를 놓고 오랫동안 내부 논쟁을 벌였다. 센은 가난을 재화, 소득, 재산의 부족이 아니라 역량 실패로 이해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주장했다. 가난은 다양한 요인 때문에 기회를 실현하지 못한 것과 관련되지 소득과 깊이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배제에 시달리는 사람은 소득이 있더라도 실질적 기능으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소득은 역량의 적절한 대리인이 될 수 없다. 대체로 소득은 목적의 수단이고 역량이 목적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사회적으로 어느 위치에 서있는가를 그들의 소득으로 판단하곤 한다. 그들의 능력과 가능성의 일부가 소득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소득이 그들의 모든 것을 대표할 없다. 하지만 소득은 그들이 지닌 잠재력을 찾아내기 위한 다양한 기회를 접할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한다. 결국 소득이란 현재의 가치만 매겨진 것이 아닌,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할 수 있는 요소도 제공한다.

결국 소득은 역량의 적절한 대리인이 될 순 없지만, 역량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소득의 격차, 즉 빈곤과 사회적 약자의 문제는 기회의 박탈로 이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역량의 실패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 그들이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정도를 가늠해볼 수는 있다.

가난의 대물림이란, 결국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자원의 고갈을 아래 세대에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국가적 차원에서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은 부적절하게 정의되는 일이 너무 잦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결 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권리가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국민의 지배'를 뜻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특징은 다수결 투표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1인 1표제, 법 앞에서의 동등한 보호, 적법 절차, 결사의 자유 등 자치의 근본 측면이 보호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민주주의를 다수결주의로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와 동일하지 않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지켜내고 유지하기 위해 다수결의 방식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의 여부를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수결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수결에서 결정된 사항은 전체의 의견과 유사한 정도의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에 소수의 의견이 무시될 가능성이 높으며, 다양성을 해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결국 다수결은 전체를 위해 개인이 침묵하며 희생해야 했던 전체주의 모습과 유사한 형태를 띨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있는 다수결의 원칙이 다른 방식으로 갈음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잊어선 안된다.

 

 

'민주주의'라는 말 자체는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인간 역량 강화와 인간 존엄성 존중을 확고하게 지지하나 어떻게 인간 역량을 강화하고 인간 존엄성을 존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정치구조가 공개적으로 논의해 처리하도록 맡긴다. 그러므로 역량접근법이 앞장서 정치구조가 이들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줘야 한다. 더불어 권력분립, 선거제도, 이익집단의 역할 그리고 이익집단의 역할을 제한하는 절차 같은 문제도 깊이 살펴봐야 한다. 정교한 구조적 분석 없이 '민주적 논의' 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필요한 말의 성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시민사회단체와 시민의 평등, 헌법의 근본 규범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검토하지 않은 채 '시민사회'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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