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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암묵적 방관의 사회적 약속, 가부장제

by 이 장르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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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아로새겨진 역사 속 여성들의 삶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어머니 없는 아이들'이라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통렬한 전언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가부장제의 역사 속에서 거듭 여성들이 감당해야 하는 '폭력'의 일상이다. 이 폭력은 아이들을 집어던지는 부모의 충격적인 모습으로 소설에 재현된다. '날아서 눈더미에 박힌 적이 있'는 이순일의 유년기 기억은 세대를 넘어 다른 가정에서 성장한 하미영의 기억 속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재현된다.

- 창작과 비평 192호 특집, 백지연 '삶의 전환을 꿈꾸는 돌봄의 상상력'

 

같은 사회를 살아가면서 여성의 삶, 남성의 삶과 같은 이분법적인 분류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도 있다. 분명 각자가 지닌 고통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맞는 말은 아니다. 이러한 발언에선 우리는 여성, 남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하나의 개체로 묶여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서 명명하고 있는 가부장제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가장인 남성이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고 가족 구성원을 통솔하는 가족형태, 또는 가족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지배를 뒷받침해 주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

남성에게 강력한 가장권을 부여하고 가족 구성원을 지배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사회체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정은 가장의 의도대로 흘러가야 하며, 가족 구성원은 가장의 의도대로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이러한 평등하지 못한 가정의 모습을 공식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채택했다.

이러한 형태의 가정에서 가장인 아버지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아버지의 부도덕적 행위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다시 말해 가족 구성원은 가장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위치에 놓여있으며, 그러한 위치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한국 사회가 왜 그토록 가정폭력에 대해 그토록 안일하게 대처했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권위 있어야만 하는 가장을 고발하는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의 하극상으로 판단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사회는 '가정폭력에 대한 고발'을 단순히 권위에 도전하는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취급하여 처리한 것이다.

사회는 개인을 보호하지 않았다. 사회는 암묵적으로 사회의 최소단위를 개인이 아닌 가정으로 규정했으며, 최소단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권고하며 방관한다. 윗글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법적인 보호자는 존재하나, 정신적 보호자는 부재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어머니 없는 아이들'인 것이다.

 

 

 

「무명」에서 이순일의 고된 삶은 망각 속에 묻힌 수많은 '순자'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조부와 살다가 고모네 집 식모살이를 하던 중 한중언과 결혼하게 된 이순일은 독일로 가서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줄곧 순자로 불렸던 그녀는 결혼하면서 자기 이름이 순일인 것을 알게 된다. 이순일이 지닌 자책과 죄의식은 자기도 모르게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게 된 '나쁜' 세계에 대한 자각과 연결되어 있다. 딸 역시 자신의 삶에 여전히 어머니의 돌봄과 희생적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원망을 내뱉지 못한다. 이들은 가족 내 돌봄노동과 여성의 삶이 지닌 모순이 단순히 소통과 사랑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소설은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서 덮고 지나가기 쉬운 돌봄과 희생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직시한다.

- 창작과 비평 192호 특집, 백지연 '삶의 전환을 꿈꾸는 돌봄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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