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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무더운 여름이다. 내리쬐는 땡볕에 달궈진 바닥을 걷고 있노라면 발바닥이 녹아내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다. 습하고 더운 여름 날씨도 모자라 마스크에 막혀버린 바깥공기에 남은 여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사실 대부분의 여름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나마 새벽의 내음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견뎌낼 수 있던 여름이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혹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엔 북적거릴 이 거리가 지금 우리 앞에 막을 내린 무대처럼 텅 비어있다는 것이 늘 신기할 뿐이다. 그리고 그곳에 채워진 몽글거리는 내음을 맡으며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설렘은 찾아오는 잠을 외면하게끔 한다. 그 설렘이 카디건 틈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새벽의 찬 공기 때문인지, 아니면 낮보다 더 뚜렷하게 느껴지는 무언가 때문인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고요 속의 스포트라이트를 오롯이 만끽할 수 있는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이 세상의 중심에 서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시간이 쌓여갈수록 세상에 치여 내 인생의 주연조차 내가 맞는지 의심되는 시간에도, 새벽의 고요함은 은은하게 나를 다독여준다.
애증의 여름이다. 여름 새벽의 내음조차 맘껏 즐길 수 없던 작년 여름과 같이 올해 여름도, 여름 새벽 내음을 예전처럼 만끽할 순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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