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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 벤치에 앉아 차가워진 바람을 스치며 차분해지고 있었다. 여유를 즐기는 방법을 몰라 일단 보이는 벤치에 덥석 앉았고, 언제나 이어폰으로 채워져있던 귀를 통해 바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순간 바람을 거쳐갔음에도 이 소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늘 바라왔던 순간이 이렇게나 쉽게 이루어지니 때아닌 허망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렇게나 갈망했던 것이 이렇게나 쉽게 얻어질 일인가.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라며 옥죄었던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여유에 대한 환상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것이 아닐까 싶기도.
기다리다 지치는 건 약속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버스정류장에 붙어있을법한 막연한 문장만 믿고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했더랬다. 그러다 어느 날 언제 맞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던 여유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여유를 기다리며 맘껏 쉬지도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 다가오는 울컥함이란. 어쩌면 여유라는 건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여유가 필요할 때, 그때마다 우리는 여유를 꺼내볼 수 있다는 걸 왜 이리 늦게 깨닫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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