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봐야지 ‘ 하고 미뤄뒀던 영화 중 하나.
최근 박정민 배우의 인터뷰를 보고,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중국 룽징시에 있는 윤동주 선생과 송몽규 선생의 묘를 다녀와서 촬영에 임했다고 하는 말을 듣고, ’ 이번 주말 할 일’에 영화‘동주’ 보기를 끄적여냈다.
박정민 배우가 느꼈던 그 울림이 무엇인지, 어쩌면 알 수도 있을듯한 기분이 들며, 작년에 다녀왔던 나라들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데이투어를 신청하지 않으면 여행자 스스로는 찾아가기 힘든 블라디보스토크(신한촌)의 신한촌 기념비, 지하철 타고 한 시간 이동 후 또다시 택시 타고 들어갔던 대련의 뤼순감옥, 상하이 시내의 북적이는 가게들 사이에 위치했던, 자칫하면 지나쳐버리기 십상인 상해 임시정부 입구.
직장인이란 제약 속에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녔기에, 운이좋게도 독립운동의 흔적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기회를 얻게되었는지도 모른다.
제목이 ‘동주‘인 것에 비해 송몽규 선생을 꽤나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영화였다. 물론 주인공인 윤동주 선생이 비중 없는 인물이란 뜻은 아니지만, 아마도 우리에게 친숙한 윤동주 선생과 함께 송몽규 선생이란 인물도 알리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권 없이 이상향을 노래해봤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겠어?
주권 없는 나라에선 이상향을 노래할 수 없는 법. 35년간 이뤄진 일본의 강제 점령은 우리가 우리의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한국인인 것조차 핍박의 정당한 사유로 만들어버렸다. 기나긴 세월 동안 핍박을 받으면서도 지치지 않았던, 스스로 한국인임을 지켜내셨던 분들을 잊지 않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도리일지도 모른다.
너희들이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는 이유가 뭔지 아나? 그것은 열등감 때문이지.
비열한 욕망을 숨길 자신이 없어서 명분과 절차에 기대는 거지.
국제법? 여기 국제법에 따른 정당한 재판을 받고 들어온 사람이 있나?
그 열등감을 숨기려고 서구식 사법 제도를 흉내 내면서 문명국이라고 부르는 건가?
일제는 무의식 중에 스스로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스로의 결핍을 마주하기보다 그것에 대한 일시적 해소를 위해 타인을 짓이겨버리곤 했던 그들은 결국 어떤 결말을 맞게 되었고, 맞게 될 것인가.
기회주의적 사고를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던 그들은, 서구의 문양과 비슷한 무늬로 스스로를 둘러쌌지만 숙성되지 못한 문양은 가품일 뿐인걸.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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