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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노트/생각노트

사유 없는 열정

by 이 장르 2022.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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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열정의 존재는 비판 없이 긍정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열정의 장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이것이 언제나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는 왜 열정을 긍정적인 요소로 규정하였는가에 대한 이유를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러 나라의 역사를 볼 때에 누군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그것이 홀로 해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때 열정을 교묘히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열정이란 이유만으로 당연시되어버린 것들이 상식으로써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 것들조차 쉽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진 독일 사람들에게 사유를 하는 것은 사치일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과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그들의 분노를 이용해 히틀러는 파시즘으로 만들었고 그것은 나치가 되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별 볼일 없던 정치인이었지만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해 무지한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을 악용했다. 그 결과 문화대혁명이란 이름의 최악의 사건을 일으켰다. 일본은 자국민들의 사유를 막아 그들의 열정을 군국주의 파시즘으로 변형해 동아시아 홀로코스트를 만들어냈다.

 

 

생각이 없으면 고통도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나는 줄곧 쾌활했고 의기양양했어요.
-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의 회고

 

 

우리는 열정이란 이름을 덮어쓴 극단적 요소들을 외면하며 합리화했다. 인간은 선하지 않으며, 누구나 충분한 사유를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진 않다는 걸 알기에 여전히 사유 중에 있는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경계를 해야 한다. 과거를 반성하며 자신들의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여전히 그들의 열정을 악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성과를 내려는 부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그렇다면 열정이 우리를 발전시킨다는 환상은 누가 심어준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조차 열정이란 것을 강요하고 그 열정을 토대로 최대의 출력을 요구한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에 의해 열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에 익숙한 것인지도 모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 자리 잡은 이러한 시스템은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서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권력을 가지려는 이들이 만들어낸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열정을 강요받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강요하고 있다.

사유 없는 열정을 광기라 한다. 사유 없는 열정이 어떤 희생을 가져오는지 알지 못한 상태의 인간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 사유는 인간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과정임에도 사유 없이 열정의 신기루를 쫓아간다면 스스로의 시야는 점점 좁아질 거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결국 보이는 것만이 진리라 믿는 이들처럼 열정인 줄 알았던 광기는 스스로를 잃게 되는 지름길인 셈이다.

 

언제나 사람들이 극단적이 되면 세계관 자체가 협의해져요, 되게 작아져요.
- 심용환, 유튜브 채널 '현재사는 심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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