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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운

영화 :: '인생(To Live)' 후기

by 이 장르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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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가도 모를 인생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내가 이런 삶을 살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듣기 좋은 말로 세상과 단절되었던 나에게 그 비용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누굴 원망하겠는가. 오랜 시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은 결국 내 손을 떠나갔다. 한 끗 차이로 갈라진 운명은 그 한 끗만 넘어서면 될 줄 알았다. 나에게 더 이상의 기회조차 사치였던가,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은 삶이었으니. 평생의 기억을 제 손으로 내어주어야 했던 아버지의 붓 끝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방관과 영원할 거란 오만이 결국 모든 걸 앗아갔다. 보잘것없던 자존심 하나 지켜보겠다며 외면했던 당신조차 이제 내 곁에 없다. 설움은 나를 길모퉁이 구석에서 얼어붙게 만들었고, 더 이상의 자존심은 무의미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나의 어린 시절, 그곳에서 받아든 것은 먼지 쌓인 상자뿐이었다.

얇은 막대 끄트머리에 붙어있던 요란한 종잇조각들이 활기를 띠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을 수 없을 줄 알았던 불길조차 우리를 죽음 가운데서 춤추게 했다. 피를 머금은 눈물로 쥐어짠 활기로 나는 다시금 당신 곁에 돌아올 수 있었다.

결국 가난이었다. 당신이 나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 이유도, 우리가 세상의 질타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고통 때문이었다. 매일 밤 당신의 눈물로 선명해졌던 가난이 우리를 피비린내로부터 비켜갈 수 있게끔 해주었다. 가난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었으니 인생이란 건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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