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나하나 끝을 맞이하고 있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을 수십수백 번 꾸역꾸역 눌러 3년 동안 잘 참아냈다. 분명 나는 입사함과 동시에 3년 뒤 퇴사할 거라고 디데이도 맞춰두고 워킹홀리데이도 갈 거라 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그냥 여느 직장인의 푸념처럼 흘려들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면서 다니다 보면 생각처럼 퇴사가 쉽지 않을 거라며 흘려 말하곤 했다. 솔직히 무엇 때문에 내 말을 믿지 않았던 건지 여전히 알 수 없다. 퇴사는 내 선택이고 그 선택을 책임지는 것도 나 자신이다. 결국 3년 전부터 앵무새처럼 꾸준히 말해왔던 대로 난 곧 퇴사를 앞두고 있고,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퇴사 날이 정해져있다는 사실이 나 자신에겐 큰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주말에 쉬고 싶을 때마다 퇴사 날을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나는 내가 정해둔 이 날짜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며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 무모함과 그 꾸준함을 대단하다 했지만, 그냥 이건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직장인의 광기일 뿐이라 답한다. 무언가를 해내려 꾸준한 노력을 들인다기보다 그저 몸에 배어버린 하나의 습관을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열아홉 수능 끝난 11월부터 일이란 걸 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월급이란 걸 받지 않은 날이 반년도 되지 않은 걸 보니 내 앞가림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구나 싶다. 물론 여기저기서 일하는 동안 서럽고 화나는 일이 정말 많았지만 어떻게 그걸 또 버티고선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여기저기서 일을 해본 경험이 아니었다면 내일 채움 공제 3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지 않았을까 싶다.
첫 알바는 정말 온 맘 다해 일했다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다행히도 그곳은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였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일을 넘기는 경우가 없으니 그게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일을 가르쳐줬던 사람들도 일을 열심히 했으며, 또 이들은 어리다거나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떠넘기지 않았다. 이곳에서 3년간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때 배웠던 것들이 지금까지 내 사회생활을 지탱해 주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곳이 이랬던 것은 아니다. 직급을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횡포를 부리고 모르는 척 자신의 일을 떠넘기는 등 다양한 일을 보다 보니 열심히 하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나에게 주어진 일만 깔끔하게 해내도 중간은 간다는 걸 깨달을 뒤론, 그러니까 첫 알바를 마무리 짓고 나선 나를 갈아가면서 일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다니다 보니 심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업무도 수월하게 처리해 낼 수 있게 되었다. 내 할 일만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중간은 간다는 걸 남들보단 빨리 알게 된 거지.
알바 경험은 확실히 중요하다. 사회의 체험판이기 때문에 그만두더라도 부담이 없고, 이때 함께 고생하며 일했던 사람들과 오래 연락하고 지낼 가능성도 높다. 본인의 일하는 스타일을 알아갈 수도 있고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 다시 말해 시야가 늘어나는 것이다.
주변 지인들 중 알 바 경험 없이, 혹은 짧게 몇 달하고 선 바로 취업을 하게 된 경우를 봤다. 대부분 자신의 상태를 살필 겨를 없이 꾸역꾸역 버티기만 해 퇴사하고는 몸과 마음이 멍들어있더라. 못 버티면 패배자라는 인식을 심어준 사회가 버티지 않아도 될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운 적 없기에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이다. 내 생각에 알바를 해보는 것은 단지 용돈을 벌기 위함이라기보다 말도 안 되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예방주사를 맞아두는 거라 생각한다.
그저 학습된 현명함 없이 열심히만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몸과 마음이 힘들어진 주변 사람들에게, 직장을 알바라고 생각하며 다녀보라 권하곤 한다. 무슨 책임감 없는 말이냐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알바라 해서 책임감 없는 것도 아니고, 직장인이라고 해서 책임감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언제든지 나를 갉아먹을 때 그걸 깨닫고 끊어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도록 직장을 다녔으면 좋겠다는 바람일 뿐이다. 시도 때도 없이 징징거리는 건 좋지 않지만 적어도 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스스로를 지켜낼 줄 알아야 하니 말이다.
내일 채움 공제가 왜 생애 1회만 할 수 있는지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거 두 번은 못해 진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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