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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으로서의 기록

🇦🇺 D-33 시드니가 아닌 멜버른을 선택한 이유

by 이 장르 202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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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쥬메... 써야지 해놓고 이제야 양식 찾아보고 있다. 기본적인 틀조차 잡아두지 않으면 출국 전까지 정말 아무것도 만들어 두지 않고 나갈 것 같아서 이제라도 끄적여보기로 했다. 호주에서 잡 구하는 건 한국과 다르게 온라인 지원보다 오프라인 지원이 더 많은듯했다. 종이이력서를 들고 무작정 나 고용하라고 들이미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메일로 지원하면 거의 열어보지 않는다니 어쩔 수 없지.

 

알바 지원할 때 내던 이력서 양식이 꽤 오랜만이다. 이것저것 그동안 일했던걸 써넣었더니 새삼 끊임없이 일했구나 싶었다. 이제는 베어버린 습관처럼 호주 가서도 동네를 둘러보기보다 바로 일부터 구할 생각하고 있으니 말 다 했지 뭐.

 

 

얼마 전 시드니에 도착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일구하는 것보다 쉐어구하는게 더 어렵다고 하더라. 본인이 백 패커스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 기간을 다시 연장할 정도로 집값도 올랐고, 쉐어도 많이 나와있지 않다고 한다. 물론 나는 시드니 지역으로 들어가진 않지만 멜버른에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하는 것 보니 여기도 만만찮겠다 싶었다. 생각날 때마다 꾸준히 플랫메이트를 뒤적거려보지만 확실히 멀쩡하면서도 가격이 괜찮은 셰어 찾기가 쉽지 않음을 느낀다. 오히려 일은 구하기 쉽단다. 물론 멜버른의 상황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시드니는 그렇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왜 친구랑 같이 시드니로 들어가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이 친구와 중학교 때부터 함께했으니 우리 벌써 16년째 친구하고 있구나. 그래서 더욱 같은 지역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내지 않으려 하는 게 충분히 이해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심지어 이 친구는 두 번째 워홀이라 영어를 잘하는 건 물론, 뉴질랜드와 비슷한 호주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기까지 하다. 물론 이들의 걱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이 친구조차 내가 멜버른행 비행기 표를 결제하기 전까지 시드니로 들어오라 꾸준히 말했으니.

 

하지만 내가 워홀을 가기로 왜 마음먹었는지에 대해 그 본질을 생각해 본다면 나는 시드니로 들어가지 않는 게 맞다. 일단 나는 나 자신을 좀 더 불확실한 환경에 던져보기 위해 워홀을 선택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쉽게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친구에게 의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친구 성격상 도움을 주려 하겠지만, 분명 친구도 워홀을 온 나름의 목표가 있을 것이고 내가 의지하려 함으로써 그 목표들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면 분명 앞으로 서로에게 좋지 않을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부분을 생각해 봤을 때 나는 시드니보다 멜버른이 더 끌렸다. 시드니는 멜버른보다 더웠고, 추위보다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에겐 시드니보다 멜버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했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품곤 한다. 내가 멜버른에 살면서 그곳에 대해 불만이 생긴다면 그건 오롯이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스스로 감당해 내야 할 몫이지만, 만약 시드니를 선택하고 나서 시드니에 대한 불만이 생긴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친구를 원망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분명 그건 내 선택이었음에도 이 친구의 탓으로 돌리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러고 싶진 않았다. 분명 내 선택에 대해 스스로 감당할 줄 사람이 되고 싶어 가는 워홀이었다. 이걸 외면하고 싶진 않았다. 이게 내가 멜버른을 선택한 이유다.

 

어쩌면 우리는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학교 친구로 또 동네 친구로 오랜 시간 지내왔다. 아마 너는 내가 너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시드니가 아닌 멜버른을 선택했다는데에 서운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내가 너를 존중하는 방식이고, 혹여 그걸 네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한다. 그냥 고집 센 사람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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