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했다. 내일채움공제때문에 꾸역꾸역 다녔는데 드디어 퇴사 날이 오는구나. 시원섭섭 중에 섭섭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퇴사는 그저 시원함만 줄 뿐. 퇴사하는 날조차 왜 이리 해야 할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분명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꼭 비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분들 덕에 퇴사하는 날까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자신의 실수령액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단 말을 듣고, 내가 지금까지 받았던 실수령액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래전 다녔던 알바조차 거래명세서를 메일로 보내주던 곳이라 오래된 메일함에서 그 메일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 참 꽤 오래 일했구나. 고3 수능이 끝난 그 해 11월부터 지금까지 6개월을 제외한 모든 달에 월급의 공백이 없는걸 보면. 끊임없이 일한 덕에 할 수 있었던 다양한 경험,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일로 만난 사이들.
먼저 일로 만난 사이, 그리고 먼저 친분으로 만들어진 사이를 모두 경험해 보고 느낀 점이 있다면, 일로 만난 사이는 친분을 만들 수 있지만 친분이 선행된 관계는 함께 일하는 건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일로 만난 관계에서 친분을 쌓으려면 기본적으로 서로의 일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전제가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친분이 먼저였던 사이에선 일하는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협업하게 될 경우 정말 답이 안 나올 때가 많더라.
일하는 방식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집약적으로 드러내준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 사람의 방향성, 가치관, 삶의 방식 등이 일하는 방식에 녹아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함께 일해봐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지만 친분이 선행된 관계는 처음부터 그걸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저렇게 오랫동안 남의 돈을 벌어오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일했지만 정말 일을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사람은 다 합쳐도 열 명조차 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확실히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떡잎부터가 다르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기할 정도로 일머리가 있던 19살도 있었고, 여태 어떻게 사람들과 일해 왔나 싶을 정도로 답답한 40, 50대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스펙이 좋고 좋은 학교를 다니면 마찬가지로 일머리도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한다. 물론 대학 이름, 스펙은 그 사람의 성실성을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라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같은 시간을 사회에서 원하는 방향을 따라 최선으로 사용하려 한 결과물 중 하나일 테니. 하지만 간혹 이러한 것들로 스스로의 눈을 가려버리곤 하더라.
3년 정도 일했던 알바에서 일을 가르쳐주던 분이 있었다. 꽤 엄한 분이긴 했지만 이분을 통해 내가 앞으로 일에 대한 태도의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마주한 어른 덕에 윗사람으로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보여주신 유일한 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업무적 치부가 그분 때문에 들춰질까 하는 사람들이었다. 항상 업무적 스탠더드를 지킬 것을 말씀하셨고, 또 그걸 본인이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는 분이었다. 업무적으로 스탠더드를 지켜가며 제시간에 일을 해낸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에게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만 요구하는 부분이 늘 존경스러웠다.
사람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조차 타인에게 해내길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아쉬움, 안타까움 따위의 감정에서 우러나온 말이라지만, 본인이 하지 못하는 걸 누군가 해내길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닌가. 친분과는 별개로 이분을 싫어했던,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불편해했던 이들은 끝내 본인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문제의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려는 시도만큼 없어 보이는 게 있을까.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건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타인의 솔직한 인정을 마주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스스로의 부끄러운 부분을 내어놓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에 대한 생각해 보게 된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사람은 늘어가지만 어른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는 게 서글퍼져온다. 내가 마주했던 몇 안 되는 어른들을 보며 배우려 했던 지난날,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어른이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이방인으로서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D-19 두려움이었다 (10) | 2022.06.07 |
---|---|
🇦🇺 D-23 퇴사 첫 주 (7) | 2022.06.03 |
🇦🇺 D-31 커먼웰스 오류 (8) | 2022.05.26 |
🇦🇺 D-33 시드니가 아닌 멜버른을 선택한 이유 (7) | 2022.05.24 |
🇦🇺 D-45 워홀 비자 승인 (17) | 2022.05.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