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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2019 유럽 🇫🇷🇨🇭🇦🇹🇨🇿🇭🇺

유럽 5-11. 헝가리 부다페스트 Hungary Budapest🇭🇺

by 이 장르 202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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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부다페스트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니.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꽤 얹어져 있었지만 그 나름대로 분위기 있었다. 우리는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을 하고선 토카이 와인을 사기 위해 세체니 다리 너머 그레이트 마켓 홀로 향했다.

시장이라 하기엔 크고 깔끔했던 이곳에선 구경할만한것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기본적인 식재료부터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파프리카 가루, 거위 간 통조림 등이 있었고 그 옆에는 토카이 와인들이 줄지어있더랬다. 이때까지 나는 토카이 와인을 살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술을 잘 마시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한국까지 가져간다 해도 마시지 않을 것 같단 생각 때문이었을까.

어디서 사야 할까. 이방인인 희 언니와 나는 시장 안을 이리저리 헤매며 가격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리 검색해도 블로그에 나와있던 여행정보엔 이렇다 할 가격과 파는 곳의 위치가 나와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발품 팔 수밖에 없던 우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어디든 가격이 비슷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고, 마침 눈에 띈 캔 거위 간을 팔던 가게에서 토카이 와인을 사기로 했다. 하지만 토카이 와인을 한 병 달라는 말과 함께 내민 희 언니의 카드는 또다시 말썽을 부렸다. 당황한 언니는 부랴부랴 느린 데이터로 어플을 켜고선 계좌이체를 하려 했다.

그러던 중, 어떤 키 큰 남자가 우리 쪽으로 오더니 우리에게 한국어로 한국인이냐며 말을 건넸다. 당황스러움과 반가움, 그리고 조금의 경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대답하려는 찰나, 그 남자는 이 사람이 우리에게 덤터기를 씌우고 있다며 시장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구석에 토카이 와인을 저렴하게 파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고개를 돌려 감사 인사를 하려던 우리는 벌써 저 멀리로 사라지고 있던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했고, 갑작스러운 등장에 감사인사조차 받지 않고 사라진 그분에게 이렇게 글로나마 감사했던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분이 말했던 대로 조금 가다가 모퉁이를 꺾어 들어갔다. 그랬더니 정말 구석에 토카이 와인과 함께 주류를 팔고 있는 가게가 보이는 게 아닌가. 그곳에 들어가 가격을 둘러보니 아까 언니가 사려 했던 가격보다 1/3 정도 저렴하게 토카이 와인을 팔고 있었다.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나도 한 병을 사기로 했고, 언니는 세병을 집어 들며 입 끄트머리를 하나씩 귀에 걸었다.

ASZU 6.. ASZU 6... 토카이 와인은 숫자가 높을수록 달다고 했던 원 오빠의 말을 기억하며 와인 라벨 앞면에 적힌 숫자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숫자가 높을수록 가격은 높았지만, 어차피 술을 잘 마시지 않으니 이왕이면 맛있는 걸로 사 가는 게 좋다는 생각에 ASZU 6을 집어 들었다. 술을 좋아하던 희 언니는 5와 6을 골라 와인 세병을 검은 봉지에 넣고 안아 들었다. 와인병이 살짝살짝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우리의 주변을 맴돌았다.

우리는 1층과 2층을 이어주는 계단 옆 벤치에 앉아 이 와인들이 무사히 프라하에 도착할 수 있길 바라며 캐리어 안에 있는 옷으로 둘둘 둘러 넣었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을 조금 더 둘러보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구나.

여행은 이렇게나 뜬금없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순간임에도 성가심을 감수하고 베풀어주는 호의는 이렇게나 따뜻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억이었던 적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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